광주 아리랑 1
정찬주 지음 / 다연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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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14일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룬 다큐소설이다. 솔직히 별로 읽고 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누구나 다 알고 있듯, 가슴 아프고 잔혹한 장면들을 대하게 될 것이 뻔했으니까. 예상대로 하루하루 읽어나가는 게 무척 힘들었다. 평범했던 사람들이, 소박하지만 나름의 행복과 희망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폭도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민주화를 부르짖었다는 이유만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이 작품을 읽기 전 접했던, 여러 매체들을 통해서도 그 날의 잔인함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의 행적과 사연들을 읽고 있자니 다시 그 날이 눈 앞에 재현되는 것 같다. '다큐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전달되는 리얼리티.

 

대학을 졸업한 뒤 주택은행 신입사원시험에 응시하고 합격해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지만 '현장을 떠난 노동운동은 관념'이라는 생각에 6개월만에 광주로 내려와 한남플라스틱 공장에 노동자로 취업하고 들불야학에도 강학으로 들어온 윤상원, 교사였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못하고 극장을 운영하는 박효선, 용접공이었던 나명관, 여기에 주방장, 구두닦이, 요리사, 운전수, 페인트공, 용접공, 가구공, 선반공, 예비군, 예비군 소대장, 회사원, 농사꾼 등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주인공이다.

 

1권 초반에 그려지는 시민들의 삶은 별 다를 것이 없었다. 비록 전남대 학생과장인 서명원의 눈에 현재 시국이 매우 불안정하고 어지러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도 앞으로 다가올 비극을 구체적으로 예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저 12.12 사태 이후 전두환이 보안사령관 등 요직을 맡게 되면서 일어난 민주화에 대한 요구, 학생들의 시위로 조금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큰일이 닥치기 전에는 예방해야 한다고 생각한 정도 아니었을까. 설마 국가가, 나라가, 국민들을 잔인하게 도륙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양동시장의 모습을 그린 평범한 장면에서도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저 자식 걱정, 먹고 사는 걱정이 전부인 평범한 사람들. 그 '평범한 사람들'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었을 광주의 상황이란 얼마나 처참했을 지, 나와 다를 것 없는 그들의 시간을 이렇게 마주대하고보니 더 절절하게 다가오는 안타까움에 사소한 장면 하나하나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들의 시간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은 계엄군들이었다.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 이미 며칠 전, 그들은 군화도 벗지 않고 전투복을 입은 채 비상대기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사회가 혼란해지면 평화와 민주화도 멀어진다 생각하는 그들의 눈에 시위를 주도하는 대학생들은 눈엣가시나 다름없다.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면서 경찰들과도 협력하며 시위하는 광주시민 앞을 마침내 막아서는 계엄군들. 작전명은 '화려한 휴가'였다. 고된 시위진압 훈련이 끝났으니 이제 휴가를 즐기듯 시위 시민, 학생을 상대로 산짐승몰이 방식으로 인간 사냥에 나서자는 뜻이었다니!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았다.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피를 흘린다. 시위대가 아니었음에도 구타당하며 끌려가고 대검과 총탄에 목숨을 잃는 사람들. 그 한명 한명의 목숨이 그리 가볍지 않았을텐데, 이렇게 책 속에 문장 하나로 기술되어버린다는 것도 마음이 아팠다. 계엄군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시민들을 살상했을까. 어디선가 그 때의 후유증을 겪는 진압군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사람이라면 그것이 당연해야 한다. 여전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모르고 돌아가신 신부님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 매도하는 그. 그의 존재 자체가 비극이다.

 

2권을 읽어야 하는데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다. 1권을 읽으면서도 대체 이 기록이 언제 끝나나, 언제 끝나나만 되뇌이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읽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평범한 우리가 평범했던 그들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폭도가 아닌,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부당한 국가의 진압에 온몸을 바쳐 저항한 사람들의 불꽃같은 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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