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 -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클래식 클라우드 22
정여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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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명성과 작품에 대한 높은 평가는 익히 들어왔지만, 사실 그는 나에게 다가가기 힘든 사람이었다. [데미안]을 읽었을 당시만 해도 문학적 오만에 젖어 펼쳐들기는 했지만 그 의미를 확실히 알 수 없어 당황했고, 얼마 전 읽은 [싱클레어의 마지막 여름] 조차 매우 진지한 마음으로 임했음에도 머리를 쥐어뜯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만약 이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와 저자 정여울님의 글이 아니었다면 나는 평생토록 헤세를 피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평소 정여울님의 책을 읽어본 적은 없으나 (물론 책은 소장하고 있다;;) 그의 안내대로 헤세의 삶과 작품을 따라가다보면 헤세의 인생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런 예감은 적중!

 

'독한 치료제가 아니라 지금의 아픔을 가만히 누그러뜨리는, 마음의 진정제가 나에게는 헤세'였다는 저자의 말부터 마음을 울린다. 이 책을 처음 펼친 시간이 새벽이었던 탓이었을까. 나의 마음의 진정제는 과연 무엇일지, 대체 저자는 어떤 아픔을 지니고 있길래 마음의 진정제가 필요한 것인지 생각하다보니 프롤로그의 첫문장부터 울컥했다. 두 번의 이혼, 세 번의 결혼, 조국 독일의 전쟁에 대한 반대, 독일에서의 출판 금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 동조하지 않은 죄, 첫 번째 아내와 자신의 우울증,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한 방랑에 대한 열망과 그럼에도 현실에 정착하는 삶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점, 경제적인 곤란까지 헤세의 삶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험난했다. 그 와중에도 늘 '글쓰기'로 돌아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헤세.

헤세는 일상의 자잘한 기쁨, 생활의 사소한 걱정거리를 소중하게 여겼다. 그는 [어떤 소설을 읽고]라는 산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큰일에는 진지하게 임하면서 작은 일에는 무관심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몰락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고.

p047

이 책은 헤세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작가 정여울이 독일과 스위스에 남겨진 헤세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헤세로부터 받은 치유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전하는 책이다. 특히 여행자, 방랑자, 안내자, 탐구자, 예술가, 아웃사이더, 구도자라는 7가지 키워드로 헤세의 삶을 재조명하는데, 도주에서 방랑으로, 방랑에서 순례로 나아가는 헤세의 삶과 그의 작품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다채롭게 이해할 수 있다.                              

 

 

                              

헤세의 작품은 대부분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데미안]에서의 헤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야말로 죄악이라고, 거북이처럼 자기 안으로 온전히 파고들어야만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다'고 속삭인다. 알고보니 [데미안]은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었던 것이다!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방랑을 그린 [크눌프]와 [페터 카멘친트], 종교적 초월을 꿈꾸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싯다르타]와 종교와 예술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시민적인 삶과 초월적인 삶 사시에서 갈등하는 개인의 모습을 그린 [황야의 이리] 또한 늘 자기 자신의 목소리에 흔들리고 고통받으면서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분투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헤세의 삶과 작품들이 정여울님 개인의 고통이나 경험과 만나 생명력을 가지고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렵다고 피하지 말고 다시 한 번 헤세의 작품에 도전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트라우마와 싸워내며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제대로 겪어야만 자기 안의 신화를 연출하는 진정한 감독이 될 수 있다.

p080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정여울님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누구보다 상처받기 쉬웠던 자신, 조직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자신, 인간관계가 힘들었던 자신을 가감없이 내보이는 그 글에, 나는 어마무시 감동받고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던 것 같다. 진정한 나란 누구인가, 무엇이 자신을 자신으로 존재하게 만드는가. 인류가 이 세상에 나타난 때부터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 그 답에 대해 바로 이 헤세와 정여울님이 이정표를 제시한다. 그 어느 때보다 숭고하고 겸허한 모습으로 읽어내려갔던 [헤르만 헤세 x 정여울]. 이들과의 만남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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