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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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했었던 한 소녀가 수많은 수의 도넛에 둘러싸인 채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 소녀는 누구였을까? 다치바나 뷰티클리닉을 운영하는 히사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소녀의 죽음에 대한 진실과 그녀의 배경등을 탐문해나간다. 누구보다 뚱뚱한 체격 탓에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해맑고 순한 성품을 지녔던 기라 유우. 유우의 친구, 기라를 담당했던 담임선생님, 기라를 맡아 키웠던 엄마, 히사노의 어릴 적 동급생과 그 동급생의 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그려지는 유우의 이미지는 여러 조각들을 통해 하나로 합쳐진다. 타인의 시선이 어떠하든 스스로는 행복했던 소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등장인물들의 묘사로 그려지는 기라 유우는 외모에 대한 시선과 평가 때문에 자신만의 소소한 행복을 빼앗기는 가련한 소녀다. 뚱뚱해서는 안돼, 뚱뚱한 것은 안 좋아, 뚱뚱하게 자라다니 새엄마에게 학대를 받았구나-같은 타인의 말들은 소녀에게 상처를 입힐 뿐이다. 동그란 도넛 사이로 펼쳐지는 풍경을 보면서 유우는 꿈을 꾸었고, 맛있는 도넛을 만들어주는 새엄마의 사랑을 느끼며 행복했고, 그런 맛있는 도넛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 기쁜 얼굴로 누구에게나 권했다. 히사노가 만난 사람들 중에 유우를 진정으로 걱정한 사람은 두어명 정도 되려나. 유우에게 안겨 달리는 바람에 남자로서의 체면을 구겼다 생각하는 남학생은, 비록 부끄럽긴 했지만 유우의 해맑은 마음에 반해 그녀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새엄마는 유우의 건강이 걱정되었을지언정 도넛에 사랑을 담아 그녀에게 건넸다. 뚱뚱한 겉모습 대신 유우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했던 사람이 적음에서 비극은 시작되었던 것이 아닐까.

 

이 중 유우의 담임을 맡았던 교사에게는 비난의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자신이 겪은 일에 도취되어 오직 자신만의 잣대로 타인을 평가하려는 사람. 그 누가 자신이 아닌 타인의 행복의 기준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일까. 소박하고 평범했던 유우의 가정에 이 교사가 침입한 순간, 유우의 세상은 무너지고 말았다.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 유우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던 것은 아닐까. 자신이 편안히 숨쉬고 안락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버렸다는 생각에, 유우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렸던 것일까.

 

작품은 유우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는 한편, 히사노가 인터뷰하는 사람들을 통해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가족에 의해 강요되는 날씬함, 아름다움을 선망해 다치바나 뷰티클리닉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존재. 아름다움의 기준은 대체 누가 정하는가. 자신이 행복하다는데, 그 누가 거기에 흙발을 들여놓을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을 위한다는 자위, 내가 너를 고쳐주겠다는 과도한 간섭 또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작품을 통해 깨닫는다. 어쩌면 우리는 '나에게 좋은 것은 당연히 너에게도 좋은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무기로 내세워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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