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일런트 브레스 - 당신은 어떤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미나미 교코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신주쿠 의과대학병원 종합진료과에서 근무하는 미토 린코는 어느 날 오코치 교수로부터 계열 병원으로 나가주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평소 업무 속도가 느린 것에 대해 주변으로부터 불만을 들어왔고, 많은 여성 의사들이 결혼이나 출산 후 의국의 가혹한 체제를 견디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며 어느 병원이냐고 묻는 그녀에게, 오코치 교수는 '무사시 방문클리닉'이라는 이름을 올린다. 재택의료를 담당하는 곳으로 고령의 환자나 병원에서 치료를 계속하지 않고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한 진료소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향한 진료소에서 만난 다양한 환자들. 뇌경색으로 쓰러져 지금은 움직이기는 커녕 음식을 삼킬 수조차 없이 마냥 누워만 있는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해 환자들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걷는 린코. 지금까지 죽어가는 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그녀와 환자들이 전하는 가슴 따뜻하고 애잔한 이야기들이 코 끝을 찡하게 만든다.

대부분의 의사는 투쟁을 멈추는 것을 패배라고 오해한다. 그런데 투쟁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조만간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때 요구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의료이다. 죽기 전 남은 시간에 누긋하게 곁을 지켜주는 치료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나는 체험으로 깨달았다.

p319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과 의사, 치료는 환자를 살리기 위한 것으로 생각한다. 최종목표는 살아남는 것. 그 과정이야 어떻든 일단 생존하는 것이 최우선과제인 것이다. 린코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유방암으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아야코는 날카롭게 질문한다. '포기하지 않는 게 절대적으로 좋다고 보증할 수 있어요?'라고. 신약을 시험해 볼 기회를 마다하고 퇴원해 자택에서 지내는 아야코는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채 부작용의 고통을 감당하지 않겠노라 당당히 선언한다. 죽음을 앞둔 그녀 앞에서 린코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야코가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 뿐. 선천적으로 근육이 서서히 쇠퇴하는 병을 가진 아마노 다모쓰, 이제 자신은 여한이 없다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나기를 원하는 후미에, 여러 장애를 보이는 말 못하는 소녀, 의국의 전설이라 불렸던 의사 등을 돌보며 린코는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고칠 생각밖에 없는 의사는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그 환자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려. 그렇다고 환자를 방치할 수도 없으니 어영부영 치료를 질질 끌다가 결국 병원 침상에서 고통만 안겨 주는 상황이 되지. 이건 환자에게나 가족에게나 정말 불행한 일이야.

p288

[사일런트 브레스]는 자신이 어떤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그리고 소중한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어떻게 하고 싶은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한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편하게 세상을 떠나고 싶었던 후미에를 이용해 결국은 고통스럽게 만드는 그녀의 아들, 오랜 시간의 간병을 견디다 못해 결국 아들을 포기하고 마는 어떤 엄마의 모습을 비난하는 것은 쉽지만 과연 우리가 그들의 입장이었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린코는 환자들을 통해 배운 것을 아버지와의 이별에 적용하며 의사로서, 한 인간으로서 한단계 도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되뇌이게 하는 작품.

 

작가의 이력이 매우매우 독특하다. 남편의 전근으로 영국 현지에서 출산과 육아를 병행하다가 의사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자 홀로 공부를 시작하고, 결국 33세에 대학 의학부에 입학, 38세에 졸업하여 대학병원에서 근무했다. 자신의 의료경험을 소설로 쓰고 싶다는 생각에 낮에는 근무하고 밤에는 습작을 계속하여 55세라는 나이에 드디어 작가로 데뷔하는 쾌거를 이룬다. '인간승리'라 부를만한 작가의 이력이 작품의 선전에 도움이 된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그런 이력이 아니었어도 이 작품은 분명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 과하지 않게 흐르는 감동, 삶과 죽음에 대해 숙고하게 만드는 철학적인 메시지까지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로 가득찬 소설이다. 처음에는 에세이인 줄 알고 읽지 않으려고 했는데 안 읽었으면 큰일날 뻔 했다. 출판사 북스피어, 마포 김사장님의 안목을 칭찬해 드리고 싶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조만간 또 만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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