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마리아나 엔리케스 지음, 엄지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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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티투시온의 조부모님이 사시던 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나. 유서깊은 저택들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지만 대부분 호텔이나 요양원으로 바뀌었거나 폐허로 방치된 채 있다. 1871년 황열병이 도시를 휩쓸자, 귀족 가문들은 이를 피해 도시의 북쪽으로 달아났고, 돌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 텅텅 빈 채로 방치된 탓에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동네. 마약 중독자들, 강도, 여장남자들이 어슬렁대는 거리인지라 여자 혼자 살기에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지만 '나'는 거기 사정에 훤하고 일정이나 시간대를 잘 알고 있다면 위험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의 집 앞 길모퉁이에서 임신한 엄마와 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아들이 노숙하고 있다. 그저 길바닥에 낡은 매트리스 세 개를 깔고 자는 더러운 아이와 엄마는, 언제나 그 길모퉁이에서 구걸을 한다. 돈을 위해서라면 주술사들의 모임에 나가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던 엄마가 돌아오지 않은 어느 밤, 그 남자아이가 '나'의 집 문을 두드린다. 아이를 집안으로 들여 약간의 음식을 대접하고 아이스크림까지 사주지만 아이의 엄마에게서 부조리한 공격과 욕설을 당한다. 그리고 자취를 감춘 그들. 그 일주일 뒤에 잔혹한 모습으로 발견된 한 아이의 시체. 그 시체가 자신이 음식을 내주었던 아이인지 확신하지 못한 채 불안한 마음을 안고 있던 '나'는 출산 뒤 아이들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엄마를 만나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집 안으로 뛰어들어간다. 다시 그 더러운 아이가 찾아와 집 안으로 들여보내달라고 말해주기를 기다리면서.

 

21세기의 '에드거 앨런 포'라 불린다는 아르헨티나 작가 마리아나 엔리케스의 소설들은 나처럼 무서운 것을 보고 난 뒤에는 밤잠을 못 이루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이다. 음습하고 무거운 이야기들, 잔혹한 묘사와 여기에 여운을 남기는 결말은 더운 여름밤 끈적끈적함을 남기며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분을 선사했다. 작품 속 배경은 하나같이 밝지 않다. 타락한 경찰들은 아이들을 죽이는 것도 망설이지 않으며, 마약에 취한 친구들은 다른 친구의 애인을 죽이기도 하고, 폐가에 들어간 실종된 아이로 인해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오빠가 있으며, 우울증을 앓던 주인공 앞에는 세모 모양의 이빨을 가진 아이가 나타나 고양이를 물어뜯기도 한다. 공포와 환상 속에서 과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환상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가운데, '우리들의 공포, 그것은 대부분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공포다'라는 말이 눈에 띈다.

 

표제작인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항의의 표시로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급진주의적인 여성 단체를 그리고 있다. 이 단체의 여성들은 남성우월주의에 의한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여성성과 새로운 육체를 만들어내는데, 화상 입은 몸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며 저항의 뜻을 전달한다. 주인공은 운동에 협력하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는데, 섬뜩한 것은 자신들은 나이를 먹어 불가능하다며 그녀에게 불 속으로 들어가기를 권하는 가족의 모습이었다. 비록 사회적인 이념에 저항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여자들이지만, 원하지 않는 행위를 강권하는 폭력도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막연히 사회적인 억압과 권력에 의한 공포가 작품 전반에 떠돌고 있다는 것은 감지했지만, 작품해설을 읽고나니 작가의 의도를 더 명확히 알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쉽지 않은 내용과 작품 해설이지만, 이 작가의 작품이 또 출간된다면 충분히 즐길(?) 용의가 있다. 그 때는 아마 더 꼼꼼하게 작품을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 환상이 현실에 침투해 결국 현실까지 먹혀버리는 다채롭고 매혹적인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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