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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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소설가 히다카 구니히코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그의 살인범으로 체포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자 작가인 노노구치 오사무. 그는 범행이 벌어졌을 때부터 사건 당일 히다카의 집을 방문했던 것, 그와 나누었던 대화, 히다카를 찾아온 방문객 등에 대해 기록해놓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런 수기가 가가 교이치로에게 단서를 제공했던 것이다. 날카로운 혜안으로 노노구치 오사무의 트릭을 밝혀낸 가가 형사. 사실 그와 노노구치 오사무는 예전 가가가 교사로 재직했을 당시 같은 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다. 노노구치는 자신의 범행을 전부 알아챈 가가에게도 범행 동기에 대해 자세히 밝히지 않고, 가가는 여러 가지 단서를 근거로 그가 히다카의 전처인 히다카 하쓰미의 죽음에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노노구치의 입을 통하지 않고서도 범행 동기를 알아낸 가가지만, 여전히 무언가 석연치 않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 형사 시리즈>의 세 번째 도서는 [악의]. 인간의 마음 속에 아무 이유 없이 싹트는 악의가 학교폭력과 맞물려 비극적인 무대를 연출한 이 작품에서는 가가 교이치로가 교단을 떠난 이유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그 동안 계속 가가의 과거가 궁금했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노노구치와 히다카의 인연이 학교폭력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만큼 가가의 이야기도 밝혀져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특히 가가 형사가 노노구치의 학창시절을 파헤치며 여러 사람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 남자의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에 대해 읽고 화가 많이 났다.

요즘에는 사회문제가 되어서 시끄러우니까 내놓고 할 얘기는 못 되지만 우리 중학교 때도 학교폭력,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철이 없었잖아, 그런데 그런 것도 필요한 거 아닌가? 변명하자는 건 아니지만요. 아니, 그게 사회에 나오면 이래저래 안 좋은 일, 힘든 일이 있잖아요. 그 예행연습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그런 것들을 뚫고 나오다 보면 어린애한테도 나름대로 지혜가 생기는 거 아니겠어요?

p325

이봐요, 아저씨! 어디서 이런 멍멍이 소리를!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현실에도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는 것이다. 왕따 정도로 뭘. 그냥 한 대 때린 걸로 뭘. 애들끼리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뭘. 그 뭘이 문제다!

 

살해된 히다카의 작품 중에 [수렵 금지구역] 이라는 작품이 있다. 주인공은 학교폭력의 피해자로, 작품 안에서 그가 당하는 이런 저런 폭력은 잔혹하기 그지없는데 가해자로 등장하는 인물의 실제 모델이 존재했다. 마침 히다카는 작품의 주인공이 된 가해자의 가족으로부터 작품을 다시 쓰거나 시중에 풀린 작품들을 회수해달라는 요구를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피해자로 그려진 인물은 과연 누구인가, 궁금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가가에 의해 밝혀지는 진실은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도 나기도 하고,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으로 한동안 한숨을 푹 쉴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로 누군가를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히고, 선한 마음에서 베풀었던 마음이 거꾸로 미움을 낳게 되어버리는 상황이라니, 역시나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알기 어려운 것은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 노노구치의 수기에 의해 히다카라는 인물에 갖게 된 선입견, 단 한 사람의 진술일 뿐이라도 그 하나로 어떤 사람이 규정되어버리는 현실이 무섭고 두렵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부조리한 악의. 그럼에도 자신의 직관을 믿고 우직한 수사를 계속해 노노구치의 사연을 모두 파헤친 가가의 형사로서의 능력은 독자에게 읽는 재미를 선사해준다. 지금까지 읽은 가가 형사 시리즈 중 특히 섬세했던 작품.

 

표지에 등장한 독버섯. 우리 마음 속에 자각하지 못하게 피어나는 악의는 저런 독버섯이 아닐까. 누군가가 불행하기를 바라는 마음, 괴롭히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매혹적일 수도 있지만 그 맛에 한 번 취하면 스스로에게도 치명적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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