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여행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던 다카오.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고 견디다 도쿄에 사는 고향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그는 취중에 접한 각성제로 인해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생활하던 다세대주택 원룸이 화재로 불에 타 쫓겨난 다카오는 보호사인 고스게에게 거처를 상담하고, 고스게의 소개로 '플라주'라는 쉐어하우스에 입주하게 된다. 입주인은 다카오를 포함해 총 일곱 명. 주인이자 입주자인 아사다 준코를 비롯, 고이케 미와와 야베 시오리, 나카하라 미치히코, 가토 도모키, 노구치 아키라. 각 방마다 문 대신 커튼이 달린 조금은 이상한 거주 형태에, 월세는 5만엔, 청소는 교대, 세 끼 식사 제공이 되는 이 곳에서 살기 위한 조건은 '전과자'일 것.

 

모두 하나씩은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모여 서로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치유해가는 과정이 잔잔하면서도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국내에는 <스트로베리 나이트> 시리즈로 유명한 혼다 데쓰야가 '읽은 사람의 가치관을 뒤흔들 수 있는 강렬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며 야심차게 내놓은 이 [플라주]는, 한 인간의 존재와 그 인간이 저지른 죄의 관계성에 대해 독자들에게 질문하며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한 순간 잘못된 선택으로 전과자가 되어버린 다카오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냉담하기만 하다. 동종업계에서 다시 일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이미 소문이 나 여행사에는 취직이 어려운 상태가 되고, 예전 직장 상사에게서는 동료들에게 피해를 입혔다며 쓴 소리만 듣는다. 연인과 데이트를 하던 도중 만난 불량배에게 과잉대처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 감옥에서 소중한 시간을 흘려보내고 만 나카하라 미치히코, 연인과 함께 코카인을 대량 소지 했다가 혼자만 잡혀 집행유예 기간인 야베 시오리,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건에 휘말렸지만 결국 사상자를 낸 고이케 미와도 교도소에 들어갔었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는 성실하게, 사회의 한 일원으로 살아보고자 한다. 발버둥치면서 어떻게든 인간답게 살아보고 싶다고 외치는데, 그렇다면 과거 그들이 저지른 잘못은 이제 용서해야 하는 것인가.

됐어. 할 수 없지......우리가 전과자인 건 사실이니까. 인생이 그렇게 간단히 리셋되지 않아. 과거는 언제까지고 따라다녀......속죄는 할 수 있어도 실수를 저지른 과거를 지울 순 없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러니까 의심받는 것도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참을 수밖에 없어. 그런 건 힘들지 않아. 다만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애타게 호소해도 믿어주지 않는다는 거......그게 제일 슬퍼.

p145

준코는 생각한다. -분명 잘못을 저질렀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벌였다. 그러나 이 나라는 법치국가이므로 설령 죄를 저질렀어도 제대로 벌을 받으면 용서해주어도 좋지 않은가. 그 사람이 제대로 갱생했는지 어떤지, 재범 가능성이 높은지 낮은지 그건 또 다른 문제-라고. 일단 벌을 받은 사람에게는 새출발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하지만 미와가 돌보고 있는 노인 신스케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항상 이런 법칙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소중한 딸을 스토커에게 살해당한 그에게, 딸의 죽음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게다가 그 살인마는 출소해서 결혼도 하고 어엿한 가장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나라면 평생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가해자의 입장과 피해자의 입장 차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다.

 

독자의 가치관을 뒤흔들만한 이야기-란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했는데,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입장이 되어버렸다. 플라주의 사람들을 보면 애잔한 마음이 들어 죗값을 치렀다면 두 번째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면서도, 만약 내가 피해를 당한 입장이거나 내 주변에 전과자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또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게 될 것이 틀림없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신스케 씨의 말처럼 범죄와 사회, 형벌과 사형 존폐 문제는 받아들이는 사회 측의 문제, 우리 모두의 문제다. 그러니 이 작품은 절대 답을 내놓을 수 없는 질문에 대해 그린 '문제작'이다!

 

현실이야 어떻든, 서로를 보듬는 플라주 사람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일본소설의 구도를 따라가면서도, 아름답다. 목숨을 걸고 자신을 지켜준 누군가로 인해,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지고 있던 미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일단은 그거면 된 게 아닐까. 여전히 타인의 온기를 필요로 하고, 건네주는 따스한 온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 그 '마음'을 알아챌 수 있다는 것. 그것만이 어쩌면 인간이 가진 마지막 희망일지도.

'플라주'는 프랑스어로 '해변'.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 모호하게 계속 흔들리는 사람과 사람의 접점. 남과 여,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사랑과 미움. 그리고 죄와 용서.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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