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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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분노를 일으키는 최악 of 최악의 인물들]

 

 

빌려 살고 있는 다케나카 가에서 자그마한 탐정 사무소를 열고 업무를 보는 스기무라 사부로. 그는 한때 대기업 회장의 사위였지만 아내의 배신으로 이혼, 딸인 모모코는 아내가 맡아 키우고 있다. 소박하지만 지혜로운 그에게 어느 날 들어온 의뢰 하나. 자살 미수로 입원한 딸과 한달 째 연락이 닿지 않는 것도 모자라 사위는 딸의 자살 시도 이유가 장모인 자신에게 있다며 절대 만나지 못하게 한다는 것. 하물며 문자와 통화도 두절된 상황. 의뢰인의 딸인 사사 유비가 입원해있다는 클리닉에 찾아가봤지만 스기무라 역시 면회를 거절당한다. 사사 유비의 남동생과 그녀의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통해 사사 유비의 남편인 사사 도모키는 표면적으로는 좋은 남자지만 여성을 깔보는 태도와 선배의 말이라면 거역하지 못하는 성향의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된 스기무라. 불안한 마음으로 사사 유비의 행적을 쫓던 그는, 사사 도모키가 소속된 운동 클럽의 회원인 다마키 고지의 아내가 사고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다마키 부인의 죽음이 사사 유비의 행방불명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확신을 얻게 된다.

저는 우리 할머니가 했던 말을 떠올렸어요. 술만 마시지 않으면, 도박만 하지 않으면, 바람만 피우지 않으면 좋은 사람이라는 건, 그걸 하니까 안 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요.

p144

책을 읽다가 가슴에서 천불이 났다. 오랜만에 현실 분노가 극에 달할만큼 <절대 영도>에 등장하는 범인들은 비열하고 비겁하고 더럽고 치사하고 인간 말종 중의 말종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글로 써서 이 정도에 평소 욕을 잘 하지 않는 나지만 <절대 영도>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실과 마주한 순간, 이 범인들이 허구의 인물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여자인 주제에-라는 말을 쓰는 남자를 나는 만나본 적도 없고 설령 만났다면 엉덩이를 뻥 걷어차주었을텐데 이눔의 사사 유비는 '그런 점만 빼면 좋은 남자에요'라고 끝까지 우기는 모습을 보니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뺨이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지경이다. 대체 이놈들은 여자를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저 성적인 도구로만 생각한 나머지 한 가정을 파탄내고 한 여성의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린 그들은 대체 '남자인 주제에' 뭐 그리 잘난 일을 하셨을까. 차마 여기에는 쓰지 못할 말이 가슴에 차올라서 답답하고 구역질이 났다. 그 끝에 찾아온 것은 그저 슬픔.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텐데. 나라면 차라리 그놈들을 내 손으로 지옥으로 보내버렸을 거다. 그러니 당연히 그 남자의 선택에 그 어떤 비난도 할 생각이 없다.

 

<절대 영도>에서 받은 충격이 너무나 커서 두 번째 단편인 <화촉>과 세 번째 단편인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는 조금 텀을 두고 읽어야 했다. <화촉>은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에피소드로 가볍게 읽어넘길 수 있었지만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의 등장인물도 속 터지게 하기는 마찬가지. 가족이 저지른 일로 자신의 '과거'가 뒤덮여버리고, '미래'마저 결정되어버리는 비극적인 이야기였다. <절대 영도>나 <어제가 없으면 내일도 없다>와 같은 사건의 의뢰만 들어온다면 나는 탐정 일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건들 속에서 온전히 자신을 지켜나가는 일이 가능할까. 의뢰인이 몰고 온 어둠에 같이 잠식당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 모든 사건 속에서 스기무라 사부로가 서 있는 자리만 공기가 다르다. 그가 존재하고 있는 곳은 청정지대, 혹은 회색지대. 사건에 휘말려 눈물을 쏟고 마음 아파하지만 결코 어둠과 손을 잡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샘솟게 하는 남자다.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스기무라 사부로의 행복한 탐정 시리즈. 이제 초보의 단계를 가까스로 벗어난 사람이지만 그가 가진 혜안과 따뜻한 마음으로 구원받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후속편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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