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의 위로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정유정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로란 이런 것이다]

낙타의 생일 파티에서 지렁이 옆에 반딧불이 앉았다.

반딧불은 반짝거리며 물었다. "지렁이야, 내가 가끔 두려운 게 뭔지 아니?"

"아니." 지렁이가 대답했다.

"갑자기 내가 더 이상 불을 밝힐 수 없게 되는 거야."

"오, 난 갑자기 내가 불을 밝히게 되는 건 상상조차도 안 되는데."

둘은 놀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상한 대화가 아닐 수 없었다. 둘은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딧불이 마침내 물었다. "너 정말로 빛을 한번 내보고 싶지 않니, 지렁이야? 아주 약한 빛줄기 정도만이라도?"

"싫어. 난 차라리 뭐든지 꺼버릴 수 있는 걸 갖고 싶어. 그렇지만......끄는 건 어떻게 하는 거니?" 지렁이가 물었다. 그리고 달을 쳐다보며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했다. "태양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어."

"우린 참 다르구나, 그치?" 반딧불이 말했다.

"그래, 맞아." 지렁이가 대답했다.

그리고 둘은 춤을 추었다.

p22-23

처음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나는,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이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엉뚱하게만 느껴졌기 때문에. 참으로, 굉장히 이상한 대화다. 게다가 묻고 답하다가 갑자기 둘이 춤을 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옆에서 탭으로 영화를 보고 있던 옆지기에게 이 부분을 읽어주었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체 그게 무슨 말이냐며, 어떤 책을 읽고 있는 거냐며,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잠을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이 장면이 잊혀지지 않았다. 책에는 묘사도 되지 않은 달빛 아래에서 둘이 춤을 추는 장면이 오래도록 생각나고 마음에 남았다.

 

현대인의 고독을 고슴도치에 빗대어 표현한 소설 [고슴도치의 소원]과, 하늘을 날겠다는 새로운 도전을 하지만 번번이 나무에서 떨어지고 마는 코끼리의 이야기인 [코끼리의 마음]에 이은 톤 텔레헨의 신작소설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동화, 우화에 가깝다. 앞의 두 작품을 읽지 않은 나로서는 [다람쥐의 위로]에 등장하는 다람쥐를 비롯, 고슴도치와 코끼리와 반딧불이, 지렁이들의 대화에 무척 당황했었다.'옝?' 했다. 솔직히 초반에는 글자만 읽어내려가고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와닿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읽을수록 마음이 차분해지고 고요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어쩐지 '보노보노'가 생각나게 하는 다람쥐와 친구들의 엉뚱하면서도 유쾌하고 뭉클한 이야기들.

 

다람쥐는 말이 별로 없다. 무슨 일이 생기든 쉽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가만히 옆을 지키는 것이 전부라면 전부랄까. 그런데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기운이 빠지고 고민이 생겼을 때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이 때 상대가 중요하다.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달려드는지, 아니면 가만히 들어주며 정서적으로 토닥여주는 사람인지에 따라 위로를 얻기도 하고,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다람쥐는 누군가가 찾아오면 찬장에서 너도밤나무 꿀단지를 꺼내어 나누어먹고,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맞장구를 쳐주며 상황을 이끌어가기도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동물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심오하고 철학적이라 몇 번씩 들여다보게 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너무 긴장하지 마시라. 의미를 다 파악하지 못하면 어떠랴. 다람쥐의 조용한 태도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 책은, 말 그대로 '다람쥐의 위로'를 느낄 수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