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지나간 후
상드린 콜레트 지음, 이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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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홉 명의 아이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한 가정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그런 그들의 삶에 쓰나미가 닥쳐온다. 물은 마을을, 사람들을,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 그나마 높은 지대의 언덕 위에 살던 오직 11명의 가족만 남겨두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물의 수위는 점점 높아지고 먹을 것도 조만간 다 떨어질 것이다. 조금 더 일찍 떠났더라면 어땠을까.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거라는 낙관적인 마음 대신, 불행이 마치 코를 잡고 흔드는 것처럼 서둘렀더라면 가족이 흩어지는 일은 없었을까. 떠날 수 있는 배는 한 척. 배의 정원은 8명.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태울 것인가. 파타와 마디는 육지에 도착하면 데리러 돌아올 거라 다짐하면서, 그러나 남기고 가는 아이들은 이미 자신들이 버린 거나 마찬가지인 거라 생각하면서 6명의 아이를 선택한다.

절름발이, 애꾸, 난쟁이. 그러니까 제일 성치 못한 애들을 남기자는 거네. 타고난 불운에 어미 아비가 쐐기를 박는 셈이야.

선택받지 못한 아이는 루이와 페린과 노에.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루이, 어릴 때 사고로 한 쪽 눈을 잃은 페린, 체격이 왜소하고 몸이 약한 노에. 공교롭게도 남겨진 아이들은 몸이 제일 성치 못했고, 한 방을 쓰고 있었다. 맨 위의 아들 둘은 아버지를 도와 노를 저어야 하니 꼭 데려가야 했고, 밑의 여자아이들은 엄마가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 판단했다. 그리고. 한 방을 쓰는 아이들 중 누구를 선택하면 깨우는 부산스러움에 이별이 어려워질 거라 자위한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아이들이 버틸 수 있을 거라 계산한 식량과 편지를 남겨둔 채 육지를 향해 떠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가족들이 자신들을 두고 떠나버린 것을 깨달았을 때의 그 황망함을, 슬픔을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 왜 자신들만 두고 떠난 것인지, 그 이유가 그들의 몸이 불편하기 때문인지, 그 기준이 무엇인지 한없이 되묻지만, 급선무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부모님이 남겨두고 가신 식량은 아무리 쪼개고 쪼개보아도 부족했다. 굶주렸다. 외부인의 침략에 두려움에 떨었다. 아이들은 결심한다. 이 집이 물에 잠기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비록 부모에게 버림 받았다는 생각에 상처는 남았지만 서로를 향한 사랑은 여전히 남아있고, 더 강해졌다.

 

육지를 찾아 떠난 가족들도 마냥 행복하고 편안한 것만은 아니었다. 망망대해에 오직 자신들만 존재한다는 두려움.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육지를 찾아야 한다는 조바심. 또다시 태풍이 몰려올까 겁을 내면서 노를 저어야 하는 고단함. 그 와중에 괴생물체마저 생존을 위협해온다. 그리고 마침내 오고야 만 비바람에 아이 하나를 잃었다. 부모라면 작품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릴 수밖에 없지만 첫 번째로 아이를 잃는 이 장면에서 정말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울었다. 어떻게든 아이를 살리기 위해 분투한 엄마. 하지만 자신이 붙잡고 있는 것이 허상이었음을 알게 된 그 허망함과 슬픔, 분노와 좌절이 한꺼번에 밀려와 나를 삼켜버렸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음에도 자신들을 덮친 불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이 슬프고 안타깝게 다가온다.

 

정신을 놓은 것 같던 엄마는 다시 길을 나섰다. 남편은 이제 그만 놓아주자고, 남아있는 아이들을 생각하자고 하지만 엄마는 그럴 수 없는 법이다. 엄마는, 엄마니까. 마지막 부분은 운명에 의한 것일 수도, 어쩌면 우연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믿고 싶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의지. 강한 삶에의 집착과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어우러진 가슴 뭉클한 결말이었다. 최악의 딜레마와 최악의 불행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강해지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 통찰하게 만드는 작품. 기억해야 할 작가가 한 명 더 늘었다.

 

자, 당신이 부모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혹은 남겨진 아이들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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