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게네스 변주곡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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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가로 등단하고 싶은 한 남자. 용기내어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투고의사를 밝히고 잠시 상담을 한 후 출판사 근처 노천 카페에서 한 편집자를 만나게 된다. 얼떨떨해하는 남자에게 편집자는 대뜸, 등단하고 싶으면 일단 살인부터 하라고 말한다. 원고에 영혼을 불어넣는 추리소설가가 되고 싶으면 사람을 죽여야 한다니, 다소 황당무계한 발언이지만, 듣는 사이 남자는 이 편집자의 말에 감화되고 만다. 이 관문을 통과하면 다시 연락하라는 편집자와 헤어지고 복잡한 머리를 정리할 겸 서점에 들른 그는 그 곳에서 한 자매를 만나게 되는데, 자매 중 언니 쪽이 추리소설을 폄하하는 말을 듣고 분노에 휩싸인다. 밀실 살인은 어린애들을 꾀는 사기극이라고 생각한다면 자신이 밀실의 절망을 깨닫게 해주겠다는 남자. 며칠 후 한 대학의 연극부 부원인 여학생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추리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바로 그. 그는 자신이 어떤 방법으로 여학생을 살해했는지 출판사 편집자에게 털어놓고, 광기에 싸여 두문불출한 채 오직 소설만 썼다. 그런 남자에게 경찰이 찾아온다.

 

[디오게네스 변주곡]은 찬호께이의 등단 10주년을 기념하는 작품집으로 총 열일곱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지난 10년간 여러 경로로 발표한 단편소설을 묶은 것으로 여기에는 미발표 작품들도 포함된다. 열네 편의 단편소설과 세 편의 습작. 그런데 습작조차도 너무나 흥미롭고 흥미진진하다. 오히려 이 짧은 습작이 뒤에 어떤 반전과 놀라움을 안겨줄 지 기대하게 만든다. '변주곡'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수록된 작품마다 배경음악을 지정하는 독특한 형식으로 지정되어 있는데, 작가 자신이 직접 유튜브에 [디오게네스 변주곡]을 위한 재생목록까지 만들어놓았다. 나는 책을 읽다 중간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이미 이야기에 깊이 빠져버린 나머지 검색할 여유가 없었지만, 혹시라도 이 책을 읽기 시작하기 전 이 정보를 알았다면 미리 유튜브에 들어가 음악을 들으며 작품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

 

앞서 소개한 작품은 <추리소설가의 등단 살인>이라는 작품으로, 타이완추리작가협회가 2010년에 내부적으로 회원 교류 프로젝트를 열어 '피가 없는 살인'을 주제로 회원들의 작품을 받는 이벤트에 출품되었다. '살인'에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만이 아닌 다른 의미를 넣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그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작품에 담긴 메시지가 잔인하고 처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 [디오게네스 변주곡]에 실린 작품 대부분이 재미있고 흥미롭지만 맨 앞에 실린 <파랑을 엿보는 파랑>부터 몰입하게 된다. 어둠 속에서 다른 사람을 훔쳐보는 쾌감을 사랑하는 한 남자. 그리고 그가 벌이는 어떤 사건. 읽자마자 '우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엄지 척.

 

미스터리, 서스펜스, 호러, 판타지, SF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장르가 여기 이 한 권에 담겨 있다. 어째서 찬호께이가 중국어권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지, 그를 잘 알지 못하는 독자라도 이 [디오게네스 변주곡] 한 권만 읽어도 그 이유를 알게 되지 않을까.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았던 작품집. 지금까지 국내 출간된 그의 작품 중 아직 읽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즐거운 독서는 독자를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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