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이 없다
조영주 지음 / 연담L / 201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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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비를 입은 노인이 책더미에 깔려 목숨을 잃는다. 천장이 무너지면서 책더미가 쓰러졌고, 그 책더미에 압사-라고 생각한 경찰과 달리 예리한 후각을 발휘해 살인사건이라 확신한 사람은 친전. 사람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를 겪는 탓에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 정년퇴직을 앞둔 형사다! 책이 잔뜩 쌓여있는 집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피해자의 얼굴, 피가 묻어있는 책뭉치. 놀라운 것은 살해도구로 쓰인 책들의 반전이 싹 뜯겨나가고 없다는 것. 여기에 반전이 없는 책이 한 권 더 있었으니 바로 애거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 이었다. 휴직 중이지만 사건을 통찰하는 날카로운 사고력을 발휘해 결국 조사에 참여하는 친전. 아직 실마리가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같은 방법의 살인사건이 또 발생하고, 결국 20년이란 시간동안 묻혀있던 원한과 추악한 진실이 세상에 밝혀진다. 누가 왜 범죄를 일으키는 것인가, 살해도구로 책을 사용한 이유는, 어째서 반전을 뜯어가는가-등등의 의문 속에서 페이지를 넘기는 손가락이 바빠진다.

[반전이 없다]는 CJ ENM과 카카오페이지가 주관하는 '제2회 추미스(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카카오페이지 연재 당시 추리소설 마니아들로부터 평점 10점 만점에 10점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전건우 작가님을 통해 국내 장르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데다 책 속 범인이 범죄에 사용한 책들의 반전을 뜯어갔다는 설정에 호기심을 가지게 된 작품. 추미스는 반전이 생명인데 그런 반전을 없애버렸다니, 독자들의 입장에서 이리 비정하고 잔혹한 범인이 또 있으랴! 게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책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니, 아내가 카페를 운영하는 공간 한 켠에 자신만의 서재를 만들어놓고 커피를 홀짝이며 추리소설의 세계에 빠져사는 친전에게 이런 날벼락 같은 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호기심과 형사로서의 직감으로 안면인식장애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능력을 선보인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이나 마쓰모토 세이초의 [선과 점] 등,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반가운 제목들의 등장과 세이초의 이름을 뒤집어 초이세 작가로 등장시킨 작가의 센스는 독서를 더욱 즐겁게 했다.

 

그의 파트너로 등장하는 김나영이라는 인물도 흥미롭다. 그녀에 대한 자세한 배경이 언급되어 있지 않아 더 궁금한데, 아버지가 사회에 무척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것과, 그런 아버지와 김나영이 사이가 안 좋다는 것, 한때 배우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과거에 죽음의 위협을 느낀 적이 있다는 정도랄까. 그런 김나영이 알콩달콩 사는 친전과 그의 아내 침례에게 정을 느끼며 함께 밥을 먹는 장면이 무척 따스하게 다가왔다. 친전과 그의 가족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훗날 밝혀지게 되는 사건의 진실과 대비되어, 최소한의 인간의 도리, 가족에 대한 애정 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좀 능구렁이 같은 모습을 보여서 나영이 약간 마음에 안든 데다, 괜히 침전의 수사를 방해할까봐 긴장했는데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에 이 파트너 관계 찬성!이오. 그녀의 배경을 자세히 설명해주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작가님이 혹시 속편을 계획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투캅스 갑시다아!

 

독특한 것은 조영주 작가님 자신이 안면인식장애를 앓고 있다는 점. 이것에 대해 작가님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므로 안타깝다, 안됐다 같은 감상은 빼겠다. 섣부른 동정이나 안타까운 마음은 금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편한 것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럼에도 안면인식장애가 좋은 점도 있다면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지자고 마음을 다잡는 작가님이 정말 대단해보인다. 그래서 친전이 나영에게 불퉁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속정깊게 그리 다정했던가. 더불어 자신의 독자가 세상을 떠나 그에게 이 작품을 바친다는 작가의 글을 읽고나니 괜스레 마음이 숙연해진다. 아직 이 세상에서 작가님의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을 떠올리며 힘내시기를. 저도 다음 작품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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