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웨이 다운
제이슨 레이놀즈 지음, 황석희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형이 죽었다. 윌의 형 숀이. 총성이 들리고 소동이 끝난 후 고개를 든 순간 발견한, 쓰러져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숀. 숀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본 순간 윌은 지진을 겪어보지 않았음에도, 지진이 일어났을 때와 비슷한 느낌, 땅이 갈라지고 자신을 집어삼키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엄마가 쓸 습진 비누를 사러 길모퉁이 가게에 갔다가 죽어버린 숀. 윌은 8층 집으로 돌아와 숀과 자신이 쓰던 방, 숀의 서랍장 가운데 서랍에 들어있던 총을 챙겼다. 울지는 않는다. 그 지역 룰대로. 울지 않을 것, 밀고하지 않을 것, 복수할 것. 날이 밝고 숀을 죽인 범인이라고 확신하며 릭을 죽이기 위해 집을 나선다. 엘리베이터가 한층씩 내려갈 때마다 등장하는 죽은 사람들, 구멍난 사람들. 삼촌 마크, 아버지 마이키, 어릴 적 죽은 대니와 그 동네 룰을 숀에게 알려준 벅, 그리고 마지막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인물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그리고 마침내 멈춰선 엘리베이터.

무척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소설이라기보다 영화의 시나리오 같은 느낌. 한줄 한줄 읽어내려갈수록 예정된 장면들이 휘리릭 지나간다. 단어와 문장의 배치, 폰트 기울기, 굵기까지 치밀한 계획 하에 연출되어 있다. 원문을 들여다본다면 라임이라는 것이 살아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시적이고, 문장들이 음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이되 보통의 형식을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인 내용은 그저 추측할 뿐이다. 숀과 윌이 사는 동네는 위험한 지역인 것 같은데 정확히 어디인지, 어떻게 그런 룰들이 전해져내려올 수 있었는지, 그들의 생존 이유는 무엇인지. 작가는 오직 현재, 지금 여기에만 집중해서 숀이 죽었고, 때문에 윌은 복수하러 간다는 간단한 설정 속에서 엘리베이터라는 환경을 접목시켜 독특한 전개를 보인다.

로비에 도착하는 짧은 시간 안에 벌어지는 일을 영화처럼 선보였다. 읽는 내내 '영화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도니, 당연히 영화화가 확정되었을 수밖에. 이야기에 미친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복수하러 가는 소년 앞에 나타난 구멍난 사람들. 잘못된 복수의 목격담과 정말 소년 자신이 무엇을 하러 가는지 시험하는 듯한 아버지의 행동들은, 마치 지금 네가 하려는 일은 잊고 다시 집으로 올라가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외면당하는 것에 지친 젊은이들을 보는 것에 지쳤다는 작가. 이 작가가 궁금하다. 실험적이고 여백의 미가 매력적인 이런 작품도 좋지만, 만약 그가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장편을 쓴다면 어떤 내용들을 풀어놓을지 무척 기대된다. 25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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