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 드 홈즈
전건우 지음 / 몽실북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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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불면증으로 미소신경정신과에 다니며 상담을 받는 주부 공미리. 건조한 삶 속에서 남편도 아니고 자식도 아닌 병원의 박도진 선생만이 그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인물 중 하나다. 그녀에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친구같은 여인들이 셋 있었으니, 일흔을 코앞에 둔 광선슈퍼 주인 전지현, 남편이 경찰로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거라고 외치는 추경자, 대학에서 만난 선배와의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홀로 키우는 싱글맘 박소희가 바로 공미리의 쉼터였다. 그들은 곰인형에 눈을 붙이는 작업을 하면서 수다도 떨고 신세한탄도 하면서 서로를 의지하는 사이. 그런 그들이 모여사는 광선주공아파트에 바바리맨이 나타났다! 어두운 귀갓길 혼자 있는 여성을 노려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는 바바리맨의 이름은 일명 쥐방울. 탐정이 꿈이었던 공미리를 필두로 네 명은 주부탐정단을 조직하고, 피해자가 여성인만큼 경찰에게는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가 있을 거라며 앞장서서 쥐방울잡기에 나선다. 그런데, 아파트 내 쓰레기장에서 여성의 잘린 손목이 든 비닐봉투가 발견되고, 급기야 소희가 납치되면서 기피코 사건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국면으로 접어든다!

[밤의 이야기꾼들]을 읽고 '부디 팬으로 받아주세요!'를 외치게 만든 전건우 작가의 [살롱 드 홈즈]. 조금 무모하다 싶으면서도 가슴 속에 열정을 간직한 주부 네 명이 모여 주부탐정단을 조직했다. 남편들에게 무시당하고 그저 자식만 바라보며 어떻게든 버텨온 시간들. 이제 더는 이렇게 못살겠다! 지키고 있던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온다. 대리만족이 엄청나다. 나에게도 이렇게 열정을 불사를 무언가가 있었던가. 게다가 죽음 앞에서도 서로를 위해 목숨을 걸고 범인과 대치하는 이 여성들이라니. 평소에는 수다를 떨고 속엣말을 털어놓으면서 의지하고, 이제는 주부탐정단으로 끈끈하게 결속되어 진한 우정을 나누는 이 여성들이 정말 부러웠다. 결혼하고 아이낳고보니 인간관계가 소박해진 나로서는 이런 만남들이, 이런 관계가 그립다.

한국추리소설계의 보물답게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본 독자라면 범인을 알아채기가 어렵지 않다. 똥눈을 가진 나도 '앗, 이 사람 뭔가 수상해!'라고 생각했더니 범인이었던 것이다! 앞서 읽은 [밤의 이야기꾼들] 보다는 조금은 덜 무서웠지만, 쥐방울같은 녀석들이, 여자를 납치해 살해하는 무서운 사람들이 어쩌면 우리 주위에서 멀쩡한 얼굴을 하고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면 [밤의 이야기꾼들]과는 차원이 다른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남편으로 가면을 쓰고 있겠지. 작품 안에서 범인은 여자에게 접근할 때 치킨을 사가면서 딸과 통화하는 다정한 아빠를 연출한다. 실제로 범인이 저런 연극을 한다면 현실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경계심을 풀 것이다. 설마 자식이 있는 아빠가 비정한 살인마일 리 없다고 믿으니까. 하지만 매체를 통해 드러나는 범인들의 신상을 들어보면 누군가의 아빠인 경우가 참 많았던 것 같다. 추악하고 잔혹한 욕망 앞에서 전혀 가족에 대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 것이리라. 어쩌면 자신은 절대 잡히지 않을 것이라 자만하는 것일지도. 누군가의 친절을, 호감가는 인상을 이제는 의심하지 않고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주부탐정단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어쨌거나 그들의 활약에 도움을 준 데다, 마지막에는 결정적 역할을 한 경비원 광규씨의 주부탐정단 가입을 열렬히 환영한다. 노모를 모시며 살다가 결혼 시기도 놓치고 이제 오십 줄에 들어선 광규씨. 너무 멋져요! 광선슈퍼가 아닌 '살롱 드 홈즈'에서 새롭게 시작될 그들의 활약을 기대한다! 제발, 속편 써주세요! 제발,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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