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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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의 어록을 줄줄 외울 정도로 혁명 사상이 투철하며 요리 잘하는 취사병으로서 인민해방군의 모범 병사로 불리는 우다왕. 그의 목표는 오로지 간부가 되어 시골에 있는 아내와 아들의 호적을 시내로 편입시키는 것이다. 사단장의 전속 요리사로 임명되어 그의 부엌을 돌보게 된 우다왕은 '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묻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며 하지 말아야 할 말은 하지 않는' 자세를 고수하며 오로지 맡은 바 임무를 해내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런 그의 모습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연심을 품게 된 사단장의 아내 류렌. 어느 날 사단장이 두 달간 부대를 더욱 정예화하고 행정조직을 간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연구하는 중요한 회의에 두 달간 참석하기 위해 집을 비우면서 류렌의 적극적인 유혹이 시작된다. 마오쩌둥이 내세운 혁명의 모토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가 새겨진 나무팻말이 제자리에 없을 때는 자신이 볼 일이 있어 찾는다는 뜻이니 위층으로 올라오도록 명령한 류렌. 그리고 마침내 자리를 이탈한 나무팻말. 우다왕은 떨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침실 문을 두드리고, 류렌은 우다왕에게 자신에게도 성과 애정의 봉사를 해줄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시작된 그들의 짧은 인연.

 

2005년 봄, 중국 광둥성 격월간 문예지 [화청(花城)]3월호에 장편소설 한 편이 상당 부분 삭제된 채 발표된다. 중국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어느 군부대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그러나 이미 많은 부분을 사전에 걸러냈음에도 발간되자마자 중앙선전부의 긴급 명령으로 초판 3만 부가 전량 회수 및 폐기되고, 향후 출판 및 홍보, 게재, 비평, 각색을 할 수 없는 이른바 ‘5금(禁) 조치’를 당하게 된다. 중국 문단은 발칵 뒤집혔고 문예계는 거세게 저항했지만 당국은 요지부동이었다. 이 소설은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는 듯했으나 예상치 못한 환경에서 이 작품은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수많은 중화권 독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해적판을 돌려 보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의 과잉 탄압은 오히려 독자들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작품은 중화권은 물론 해외 독자들 사이에서도 반드시 읽어야 할 문제작이 되었다. 그렇게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는 21세기 중국 문단 최고의 화제작이자 비공식 베스트셀러로 떠올랐으며, 해외에서도 10여 개국에 소개되어 세계 문학계의 찬사를 받았다.

 

파격적이고 시적인 성애 묘사로 논란의 중심에 놓였던 이 작품이 당국으로부터 금서 조치까지 받은 이유는 마오쩌둥이 내세운 혁명의 모토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의 언어로 전락시킴으로써 혁명 전통을 희화화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품 안에서는 마오쩌둥의 전신 석고상이 박살나는 장면, 류렌이 그의 초상화를 찢어 발로 짓밟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중국 사회에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라는 한마디는 혁명 언어의 경전이자 무소불위의 금언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 언어를 인간의 욕망으로 해체함으로써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개개인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근원을 확인하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연월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옌렌커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이번이 3판이다. 아주 오래 전 출간되었을 때는 단순히 성애 묘사 소설인 줄만 알았고, 이렇게 깊은 메시지가 담겨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연월일]에서 매혹되었던 그의 시적인 묘사는 이 작품에서도 역시 빛을 발해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한순간 불꽃 같았던 연심. 과연 류렌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성기능에 장애가 있으면서도 혁명정신으로 똘똘 뭉쳐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복수? 단순한 외로움 달래기? 서로 사랑한다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보이는 여자의 결심은 단호하다.

 

중국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마오쩌둥과 혁명에 대해 나는 거의 모르는 상태로 류렌의 심리와 작가의 문장에 집중하며 책을 읽었다. 모두가 혁명과 충성이라는 기치 아래 앞을 향해 달려가는 그 시대에서 여자는, 개인으로서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을까. 어려우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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