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머린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무면허 운전을 하다 사람을 치어 소년감별소로 향하는 다나오카 유마. 그를 이송하고 있는 사람은 예의, 그, 진나이와 무토다! 이제 곧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될 소년을 가운데에 두고 '고보 대사는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둥의 두서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진나이. 가정법원 조사관으로 다시 재회하게 된 진나이와 무토는 같은 조가 되어 지금 함께 근무하고 있다. 협박 편지를 사방에 보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오야마다 슌을 정기적으로 면담하고, 다나오카 유마가 일으킨 사건에 대해 이리저리 알아보던 두 사람은 유마가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었고, 10년 전에는 또다시 교통사고로 친구를 잃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포인트에서 무언가를 떠올린 진나이. 소년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 드러나면서 작가는 유머스러운 대화로 세상에서 가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어렵고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소중한 자식의 생명을 빼앗겼는데, '어쩔 수 없죠'라고 생각하는 부모는 없다.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의 고통과 증오로 제 가죽이 벗겨져 오장육부가 드러나는 것 같은 심정이리라 상상할 수 있었다. 아니, 상상만으로도 이 정도니, 실제로는 제정신을 유지하기도 어렵겠지. 하지만 그래도 바뀌는 건 없다. 아무리 괴로워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필사적으로 어느 선에서 타협점을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으로 지옥에 떨어진 이들이 왜 타협점을 찾기 위해 마음고생을 해야 하는 걸까.

p199-p200

사람을 차로 치어 죽게 만든 사람을 왜 똑같이 차로 치면 안되는가. 세상을 향해 저주를 퍼붓고 협박을 일삼는 사람에게 왜 협박하면 안되는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되갚아주면 안되는 이유는 진정 무엇인가. 논리적으로 답은 나와있다. 우리 사회에는 법이라는 것이 있고, 어쨌거나 이 법을 준수해야 이 사회가 유지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과연 이런 대답이 피해자, 혹은 피해자의 유족에게 통용될 수 있을까. 남에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사람을, 반성한한다는 이유로 용서해야 하는 걸까. 그보다, 내가 용서 안했는데 법이 용서했다고, 죗값을 다 치렀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 [서브머린]을 읽다보면 머리도 아파오고 마음도 묵직해진다. 나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누구든 우리 곰돌군들을 건드리는 인간들은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해보지만, 이 작가가 던지는, 그래도 한 번 그들을 이해해보자, 모두 파렴치한은 아닐테니 그들의 입장에서도 한 번 생각해보자는 의도 앞에서 마냥 고집을 부릴 수만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다나오카의 친구의 목숨을 빼앗은 그 남자의 모습이 너무 처절하고 마음 아팠기 때문에. 누구든 그런 일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빚을 갚지 못해서 괴로운 거라면, 갚으면 안되는 게 아닐까. 그런 게 벌이죠.

p259

이사카씨는 자신이 만들어낸 이 세계에서 답을 내놓지는 않는다. 오히려 진나이를 비롯한 등장인물을 앞세워 이런저런 경우가 있는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래, 라고 질문한다. 이런 문제 앞에서는 망설이게 된다, 당연히.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 있고, 가해자가 세상을 구하는 영웅으로도 활약할 수 있는 이사카 월드. 그의 따스한 시선과 다정한 위로에 판단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책을 막 다 읽었을 때는 할 말이 많을 것 같았는데, 막상 리뷰를 쓰려고 보니 무슨 말을 어떻게 쏟아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어렵다. 그냥 나는 [서브머린]이나 한 번 더 읽고 [칠드런]이나 읽으면서 이사카 월드에 다시 한 번 푹 빠져보련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작가가 이런 멋진 작품을 들고 와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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