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형에 이르는 병
구시키 리우 지음, 현정수 옮김 / 에이치 / 2019년 11월
평점 :
절판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어릴 때는 신동으로 불렸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자신보다 뛰어난 동급생들에게 실력차를 느끼고 좌절하고 만 가케이 마사야. 결국 학교를 중퇴한 후, 대학도 변변치않은 곳으로 진학하게 된다.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항상 우울해하며 늘 주위 사람을 비웃는 태도로 일관하던 그에게 어느 날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5년 전 체포된 희대의 연쇄살인마 하이무라 야마토가 감옥에서 보낸 메시지. 자신이 저지른 죄는 인정하지만, 마지막 한 건만은 자신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며 누명을 벗겨줄 것을 제안한다. 하이무라는 예전 마사야의 동네에서 빵집을 운영하던 사람이었고, 마사야도 그가 만든 빵을 좋아해서 가게를 자주 찾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째서 자신에게 편지를? 의문을 간직한 채 하이무라를 면회 간 마사야. 무의식적으로 그의 외모와 세련된 태도에 이끌린 마사야는 결국 하이무라의 부탁을 승낙하고, 그의 과거와 살인의 행적 등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일본 미스터리 스릴러를 즐겨 읽은 독자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유명한 [살육에 이르는 병]을 연상시키는 제목의 작품이 출간되었다. 이 [살육에 이르는 병]을, 나는 일본 미스터리 입문 단계에 접했는데 다 읽고 난 뒤의 충격이 너무나도 어마어마해서 바로 처분했었다. 새빨간 표지와 저주와도 같은 제목, 충격적인 내용들에 잠식당할 것 같은 두려움에 한시도 내 방 책장에 두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살육에 이르는 병]을 연상시키게 하는 제목이라니! 글자 하나만 다르다. 살육이 아닌 사형. 사형에 이르는 사람은 과연 누구이고, 무엇이 사형에 이르게 하는 것인가. 그것을 정말 병이라는 말로 단정할 수 있는 것인가. 역시 꿈에서도 보고 싶지 않은 기괴하고 징그러운 표지를 손끝으로 넘기며 두려움 가득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런. 한 번 붙잡으니 중간에 손에서 놓기가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었다.
마사야가 만난 하이무라는 10대 청소년들을 고문하고 죽인 희대의 살인마라는 수식어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순식간에 마사야를 사로잡고 그를 조사에 끌어들였다. 왜 마사야인지, 마지막 사건은 정말 누명인 것인지, 만약 누명이라면 마지막 희생자를 죽인 범인은 누구인지, 하이무라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대체 무엇인지, 읽으면서 이렇게도 많은 질문을 품게 하는 작품은 오랜만인 것 같다. 마침내 진실이 밝혀지는가!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입을 쩍 벌리게 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마사야의 동창이자 평소 그를 동경해왔던 가토 아카리가 내뱉은 한 문장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사형에 이르는 병'은 생각보다 깊숙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폭넓게 퍼져 있었던 것이다. 감옥 안에서조차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을 선보인 하이무라.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문장이 자연스레 떠오르게 한다.
하이무라의 성장배경은 분명 불우했다. 지적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어머니에게 태어나 양아버지들에게 신체적, 성적으로 학대당했으며 충분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멸시 받았다. 작품에서는 가정환경이 불우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낸 사람들을 모독하는 행위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물론 수많은 '하지만'이 붙는다. 누구나 그런 어둠을 버텨낼 정도로 강하지 않다는 것, 직접 그런 상황에 처해보지 않으면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할 지 알 수 없다는 것. '하지만' 하이무라의 범죄는 너무 잔혹했고, 범죄를 더해갈 수록 누군가를 괴롭히며 희열을 얻었다고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런 그의 어둠에 너무 압도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연쇄살인범의 심리 묘사에 탁월한 능력을 선보인 구시키 리우. 이 작가가 앞으로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이런 작품을 창조해내는 그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 어디를 걷고 있는 것일까. 반전을 맞이하고 나면 홀가분해야 하는데 계속 느껴지는 이 찜찜함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지. 아마 오늘밤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