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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겨우' 34층밖에 되지 않는 잿빛 건물에서 수많은 생명이 태어난다. 부화-습성 훈련국장에 의해 설명되어지는 이 곳에서는
보카노프스키 처리가 이루어져 난자는 움트고, 발육하고, 분열한다. 난자 하나에, 태아 하나에, 성인 하나-라는 일반적인 공식을 따르지 않고
8개에서 96개까지 싹이 생겨나고, 모든 싹은 완벽하게 형태를 갖춘 태아가 되고, 모든 태아는 완전히 성숙한 어른이 된다. 어떤 태아에 무엇을
주사할 지 정해져 있고, 몇 세부터 몇 세까지는 어떤 교육을 실시하는 지 정해져 있는 사회. 인간은 모든 인간을 공유한다-는 지침에 따라
자유로운 성생활이 보장되어 있지만 부모, 사랑, 책임이라는 개념은 상실되어 있는 세계. 이 세계에 야만인이라 불리는 '존'이 찾아든다.
셰익스피어를 읽고 '멋진' 신세계에서 편리함과 신기술이라 대변되는 그 모든 것을 거부하는 한 인간.
태아가 배양되는 첫 장면부터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언젠가 먼 미래에서는 인간의 생식활동은 중지되고 '필요'에 따른 생명이
태어나지 않을까 막연히 상상해 본 적은 있지만, 책에서 묘사되는 생명 창조 과정은 보다 구체적이고 적나라하다고 할까. 생명-이라는 단어에도
존엄함이나 소중함은 내포되어 있지 않고 개인의 존재는 오직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어머니나 아버지라는 존재를 떠올릴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져 있기는 커녕 '어머니'의 몸에서 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음란하거나 불결한 것으로 간주하며, 때문에 남녀의
사랑의 행위를 통해 생명이 창조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인간을 공유할 수 있다는 슬로건 아래에서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기지만 물론 그 관계에 무게감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식과 마음을 스스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소마'라는 약물에 의지해 기분 나쁜 일을
즉시 잊는, 마치 로봇과도 같은 생명들이 가득찬 신세계다.
그 신세계에 '야만인'이라 불리는 존이 찾아온다. 신세계 사람들에게는 그려볼 수조차 없는 어머니 린다를 대동하고. 사실 린다는
신세계 사람이었으나 존을 임신한 채 우연한 사고를 계기로 '야만인'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함께 지금까지 생활해왔다. 신세계 사람들에게 늙고 병든
린다는 관심 밖. 이질적이면서도 신기한 생명으로 보이는 존에게 누구나 궁금증과 신비함을 가지고 다가서지만, 그 누구도 존의 사상과 생각에는
관심이 없다. 존에게도 이 신세계는 불합리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그는 안락함을 원하는 대신 신과 시와 참된 위험과 자유와 선을, 그리고
죄악을 갈구한다. 인간이 본성 그대로를 간직한 채 자신의 의지로 살아갈 수 있는, 죽음마저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원한 것이다.
신세계 사람들과 존에게는 수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가장 눈에 띄는 한 가지는 그들은 책을, 셰익스피어를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학을 즐기지 않고 오직 실용적인 목적으로 교육만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어쩌면 인간적인 감성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 아닐까. 늘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인용해 대화를 이어나가는 존은, 신세계 사람들에게 있어 처음부터 출발이 달랐던 사람, 근본이 다른 인물로 비춰졌을 것이다. 작가는 어쩌면
문학이야말로 영원불멸하며, 문학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듯 하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이 작품은 과연 우리가 사는 세계가 어떻게 변화해 갈지, 그 안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일지,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반문하게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하고 흠잡을 데 없는 너무나 멋진
신세계이지만, 과연 그 신세계가 정답일까. 아직 지금 사는 현재에 발을 딛고 서 있는 나에게 신세계는 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조종당하는
마네킹이 사는 세상처럼 느껴졌다. 정말 미래에는 작품에서 묘사하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지, 우리는 어떤 인간들로 변모하게 될 지, 가능하다면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