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 아는 농담 - 보라보라섬에서 건져 올린 행복의 조각들
김태연 지음 / 놀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신혼여행으로 보라보라섬에 꼭 가고 싶었다. 고갱이 머물렀던 그 곳. 가면 그림 속 여인들을 실제로 볼 수 있을까. 언젠가 보았던 그 보물같은 물 속에 나도 들어갈 수 있을까. 그러나 포기했다.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야 하고 열 몇 시간이나 되는 비행 시간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유럽만 오고 갈 때도 장거리 비행에 다리가 퉁퉁 부어 힘들었는데 그 먼 데를, 그 오랜 시간을! 이미 결혼 준비로 바쁘고 정신없던 차에 안되겠다 싶었다. 짝꿍은 이 때 아니면 언제 가보겠느냐며 가자고 했지만, 비용도 비용이었고, 저질 체력에, 그저 쉬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차선택은 풀빌라를 이용할 수 있는 발리. 그리고 나는 이 때의 선택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그 이야기는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나의 로망 중 하나였던 그 보라보라 섬에서 9년을 살아온 이가 있다. 영화를 전공했고 다른 국적, 다른 피부색,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남자와 결혼식이 없는 결혼을 하고 현지인들과 뒤엉켜 현지인같은 삶을 사는 그녀. 초반에는 동화같은 삶을 사는 그녀의 모습이 부러웠다. 심지어 프러포즈도 로맨틱의 절정. 그 때는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산호초와 대왕조개가 보이는 곳에 놓아둔 반지라니! 영화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어디에 있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아침에 일어나고, 일을 하고, 밥을 해먹고, 그녀가 사는 곳 또한 창문 열면 바로 바다로 뛰어드는 그런 집이 아닌 4층 빌라.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에서의 숨가쁜 삶의 현장이 그 곳에는 없다는 것. 소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상권이 발달하지 않은 것 같은 섬, 하루종일 숲에서 뛰고 웃고 뒹굴며 자라나는 아이들, 마트에서 매번 고추를 구입하는 그녀에게 투박한 손길로 내민 고추 한 봉지의 온정. 그런 여유들이 부러웠다.

보라보라 섬에서 행복할 수 있겠다고 느낀 것은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는 집을 얼마에 샀고, 산 집이 얼마에 올랐고, 또 누구는 직장을 어디로 옮겼고, 월급이 얼마나 되고 하는 것은 보라보라 섬에서 논외의 대상이다. 적어도 책에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책에 등장하는 단어는 입 안에 굴려보는 것만으로 어색해지는 꿈이라는 단어, 잠든 그들을 깨웠던 이웃집 할머니의 따스한 온기, 멀리 살게되어서야 비로소 애절해지는 가족의 정. 그런 것이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오늘 짝꿍이 누군가를 부러워하면서 속상해했던 기분에 전염되어 아주 살짝 우울해했던 나의 모습을 반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 옆에 가족이 있고, 우리 모두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있다. 그거면 된 거다.

장소만 보라보라 섬일 뿐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다.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매우 잘' 쓴 글이라고 할 수도 없겠다. 솔직히 이 정도의 글 쓰는 사람은 많을 테니까. 그래도 보라보라 섬에서의 일상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존재하는 소중한 일상을 일깨워준다. 우리만 아는 농담을 나눌 수 있는 이가 옆에 있다는 것, 소중한 가족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는 것, 분명 우리에게도 있을 따뜻한 이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시간들을 보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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