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냥개자리 ㅣ 빌리암 비스팅 시리즈
예른 리르 호르스트 지음, 이동윤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17년 전 세실리아 린데라는 여성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버지는 패션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였고, 세실리아 본인은 그 회사 브랜드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던 데다 그녀가 실종되기 전에는 린데 가문이 부유한 가문 아홉 번째로 꼽히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돈을 목적으로 한 범죄라 생각했지만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는 오지 않았고, 결국 그녀는 나체 상태로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범인으로 형을 받은 자는 루돌프 하글룬. 당시 수사 책임자였던 빌리암 비스팅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사건 수사를 지휘했고, 증거품과 목격자 증언 등을 토대로 그를 체포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사건의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수사 책임자였던 비스팅은 정직 처분을 받게 된다. 과거의 행적을 다시 뒤쫓으며 자신이 실수한 것은 없었는지, 과연 루돌프 하글룬이 범인이 아닌 가능성이 있는지, 증거를 조작한 사람은 과연 누구인지 개인적인 조사를 시작한 비스팅.
그런 그의 곁에는 든든한 지원군이자 딸인 리네가 있다.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는 그녀는 비스팅의 기사가 자신이 일하는 신문사의 1면 기사로 나가는 것을 막아보고자 한 살인사건 현장에 출동한다. 피해자는 두부를 가격당해 살해당한 중년의 남성. 발빠르게 움직여 그의 정보를 알아내 주거지를 찾아간 리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게 공격당하면서 더 깊게 사건의 중심부로 들어간다. 살인사건에 관한 정보를 모으면서도 아버지가 처한 상황을 돕기 위해 비스팅에게 적극적으로 가담, 그가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세세한 부분에 주목하며 사건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조사가 계속될수록 드러나는 과거와 현재의 연관성. 과연 이들이 쫓고 있는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지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른 리르 호르스트의 <빌리암 비스팅 시리즈>는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찾아보니 이미 [추락하는 새]로 국내에 첫 선을 보인 적이 있다. 경찰소설의 주인공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자신의 일에 대한 고뇌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강직하고 올곧게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형사 아버지와, 어떤 일이 벌어져도 겁먹지 않고 오히려 더 당당하고 주도적으로 사건에 맞서며 수사에 일조하는 딸의 콜라보레이션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북유럽 스릴러에서 볼 수 있는 음울한 분위기가 아예 읽히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만큼은 아니며, 주인공의 고뇌 또한 그보다는 깊지 않다. 해리 홀레와는 달리 빌리암 비스팅은 과거에 잠겨 상처입기보다, 어떻게든 두 주먹 불끈 쥐고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달리는 이미지라고 할까. 그 옆을 냉철하고 객관적인 판단력과 용기를 겸비한 딸인 리네가 함께 달려주고 있으니 든든할 수밖에.
작가인 예른 리르 호르스트는 1995년부터 라르비크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다 2004년 <빌리암 비스팅 시리즈>를 출간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수사 책임자로 일했던 경험을 작품에 녹여낸 덕분에 그의 이 시리즈는 사건 수사 현장의 긴장감과 속도감을 그대로 재현해냈다는 평을 들으며 노르웨이 북셀러상, 노르웨이 최고의 범죄소설에 수여하는 리베르톤상, 북유럽 최고의 범죄소설에 수여하는 유리열쇠상, 스웨덴 범죄소설 작가 아카데미에서 최고의 범죄소설에 수여하는 마르틴 베크상을 휩쓸었다. 영미스릴러에서 보여지는 엄청난 속도감을 맛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발한발 밟아나가는 탄탄한 수사 전개 과정을 자랑하는 것이 이 작품의 장점이 아닐까 싶다. 이 아버지와 부녀의 조합,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수 있게 되기를. 우선은 [추락하는 새]부터 먼저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