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예찬 - 숨 가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품격 있는 휴식법
로버트 디세이 지음, 오숙은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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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 때리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외출하기 전, 전쟁같은 준비 시간을 지내고 차에 올라타 안전벨트를 맨 순간부터 시작되는 소중한 멍 때리기. 신랑이 운전하면서 말을 걸면 특별히 말해두기도 한다. 나 지금 잠시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하니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가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공간에 있을 때도 이 멍 때리기 기술이 발휘되는데, 그것이 내 의지대로 조절할 수 없다는 점이 나조차도 의문이다. 커피는 잠을 깨기 위해서도 마시지만 '차 한 잔의 여유'가 필요할 때도 마시고, 게임과 스포츠는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헬스클럽에서의 운동보다 산책을 즐긴다. 여행 갈 때 준비물은 아낌없이 챙기지만 가서 무얼 할 지 0부터 10까지 촘촘하게 계획을 세우지는 않으며 그날 그날의 날씨따라 기분따라 숙소에 하루종일 있기도 한다. 재미로 스페인어를 배워본 적이 있고 도중에 그만두긴 했지만 언젠가 다시 배워볼 의향이 있다. 갑작스러운 휴가가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일은 독서와 멍 때리기와 시체놀이?! 크아! 너무 하고 싶다!

 

책 뒷날개에 첨부되어 있는 <당신이 제대로 못 쉬고 있다는 신호 열 가지>의 체크리스트 중 몇 가지다. 총 열 가지 중에 '독서의 순수한 즐거움보다는 숙제하듯 책을 읽는다'는 그럴 때도 있고 안 그럴 때도 있어서 패스. '깨어 있을 때 쓰는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서 잠을 잔다' 항목에서는, 글쎄. 육아 때문에 다음 날의 에너지를 위해 잘 때가 더 많으니 이것도 패스해야 하려나. '내 삶은 언제 즐기지?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또한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으니 패스다. 육아도 내 삶의 일부분이고 이 또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하지만 둘째 곰돌군이 정신이 나가고 귀가 얼얼하도록 울어제끼거나 첫째 곰돌군에게 엄청나게 짜증을 낸 날은 우울감으로 가득 차 혼자 있는 시간을 절실히 원하기도 하니까. 음. 여기까지 쓰다보니 또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는데 새벽 1시라 커피우유로 대신한다.

 

[게으름 예찬]이라니, 취향저격의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친정엄마로부터 '넌 참 게을러'라는 말을 종종 듣곤 하는데, 그래도 결혼을 한 지금은 꽤 많이 부지런해진 편이다. 두 곰돌군을 챙겨야 하니까. 곰돌군들이 좀 성장하고 난 후에는 또 예전의 게으름 모드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는데, 벌써부터 어떻게 하면 좀 더 게으르고 편안하게 살 수 있을까를 연구하면서 집안일을 분류하고 있다. 침대에 누워 뒹구는 시간을 사랑한다. 지금은 벌떡 일어나는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누워서 이 생각, 저 생각 하고 있으면 행복했다. 그렇게 한껏 뒹군 후에 일어나 배를 채우고 다시 나른하게 보냈던 시간들. 크흑. 지금은 꿈도 꿀 수 없어서 더 그립다. 그래도 내 밥벌이를 하는 데는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이 정도 게으름은 피워도 되지 않겠냐며, 정말 해야하는 최소한의 것만 한다. 현재의 내가 집안일도 최소한의 것만 하는 것처럼.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게으름에 대한 찬양으로 채워져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에게 게으름은 삶에 있어서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라 여겨진다. 바쁘게, 급하게 허덕이며 생활하다보면 꼭 실수를 했다. 지금도 무언가 서둘러서 하면 발이 걸려 넘어지듯 감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생채기가 생긴다. 게으름을 피우며 천천히,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는 것. 느긋하게 그런 순간을 거칠수록 더 단단한 한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책에서 독서에 대해 표현한 부분이 있는데 그 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과 딱 맞아떨어져 놀랐다.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모험을 하기 위해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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