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크라이
헬렌 피츠제럴드 지음, 최설희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아기를 잃은 엄마 조애나에 대한 첫인상은 별로였다. 비록 앨리스터가 만나고 4주가 지난 뒤에야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것을 밝혔다고 해도 결과는 유부남과의 불륜으로 아이를 낳은 '애인'이니까. 심지어 그녀는 앨리스터의 집에서 그와 그의 아내인 알렉산드라의 침대 위에서까지 사랑을 나누다 알렉산드라와 그들의 딸 클로이에게 적발된다. 그 일로 알렉산드라는 그 다음 날 클로이를 데리고 호주로 떠났고, 지금 앨리스터와 조애나는 양육권 분쟁으로 클로이를 다시 데려오기 위해 길을 나선 참이었다. 남편이 있고 아이 둘을 키우는 내 입장에서 조애나는 당연히 최악의 여자였고, 그들이 알렉산드라로부터 클로이를 다시 데려오려는 시도는 최악의 행동이었다.

 

아직 9주밖에 되지 않은 아들 노아를 데리고 호주로 향하는 여정은 험난하기만 했다. 아이는 끊임없이 울었고, 앨리스터는 아주 우아하게 잠들어 있었으며 비행기 승객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길은 없었다. 노아가 태어난 후 세 시간 이상 연달아 자지 못한 조애나는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고 있었고, 좁은 공간에서 아무리 달래도 계속 우는 노아의 울음소리는 스트레스였다. 아이를 조용히 잠재우기 위해 약간의 약을 먹였고 아이는 잠들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렌터카로 시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 위에서까지 노아는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잠든 것이 아니라 이미 숨을 거둔 아기. 패닉에 빠진 조애나를 겨우 진정시킨 앨리스터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아이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땅에 묻고, 누군가 아이를 납치했다며 연기를 시작한다. 자연히 앨리스터의 전부인인 알렉산드라에게 수사의 초점이 맞춰지는 가운데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지는 거짓말, 죄책감, 그리고 고개를 쳐드는 의심과 밝혀지는 진실.

 

최악의 여자라는 첫인상으로 시작했지만 페이지가 넘어가면서 조애나에 대한 연민을 거둘 수는 없었다. 같은 엄마로서 아이를 잃은 고통이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마치 현실인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감옥에 갈 것이 두려워 앨리스터의 계획을 수용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조애나는 자신이 아이를 죽인 엄마라고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어진다. 노아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것이었으므로 차라리 죄를 고백하고 벌을 받고 싶었다. 그 와중에 앨리스터의 너무나도 침착한 모습이란. 정치에 적을 두고 있는 그는 이 상황마저도 이용하려 하고, 아이를 잃은 아빠답지 않게 슬프거나 절망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위선처럼 여겨졌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전부인인 알렉산드라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기 위해 밑작업까지 하고 있었으니, 어째서 조애나가 앨리스터에게 빠져들었는지 의문일 뿐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조애나도 금방 깨닫게 되었지만.

 

소설은 아이를 잃은 조애나와 클로이를 지키려는 알렉산드라의 시각으로 진행된다. 아이를 잃은 뒤에도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어보이는 앨리스터와는 달리 무엇이 노아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를 따져보고 죄책감에 빠져드는 조애나와 비록 부족한 엄마지만 딸 클로이를 향한 애정만은 강렬한 알렉산드라를 보면서 '모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낳은 후 여성에게 부가되는 그 모든 책임감과 의무와 평가하는 시선들. 그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그녀들은 결국 주도권을 앨리스터에게 넘겼고, 앨리스터는 주도면밀하게 상황을 제어하고 모든 것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조종한다. 오직 자기 자시만을 사랑하는 남자. 아이의 죽음까지 자연스레 엄마에게 떠넘겨버리는 남자. 그래서 그가 맞이한 결말은 어떤 의미로는 매우 통쾌했다고 할까.

 

조애나는 [안나 카레니나]에 등장한 '다른 사람의 고통 위에 너의 행복을 세울 수는 없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고 이제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책임지고 주도권을 갖기로 한다. 이제는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할 때. 당당해진 조애나와 새로운 행복을 찾은 알렉산드라의 모습이 매우 고무적이다. 이 작품은 심리 스릴러이기도 하지만 아기를 잃은 엄마의 고통을 심도있게 그려내면서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 되기 위한 여성들의 분투를 그린, 안타까우면서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진실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그 여정이 더 인상깊은 작품. 읽자마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 여성들의 마음을 되짚어보면서 한 번 더 읽고 싶게 만드는 그런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