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막이 내릴 때 (저자 사인 인쇄본)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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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는 멋진 작품]

 

도쿄의 한 아파트에서 목 졸려 죽은 변사체로 발견된 중년 여인. 비슷한 시기 그 아파트 근처에서는 한 남자가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된다. 일견 전혀 연결고리가 없는 사건처럼 보였으나 가가의 뛰어난 추리력으로 경찰은 두 사건이 어딘가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수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렇다 할 단서가 없는 상황. 이 와중에 중년 여인의 시체가 발견된 아파트 달력에 적혀 있던 필체가 어머니 유품에 들어있던 메모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 가가는, 이 사건이 어렸을 적 집을 나간 어머니와 연관되었음을 직감한다. 어머니와 인연을 맺었던 것으로 알려진 남자는 누구인가. 그가 어머니의 죽음에도 개입한 것은 아닌가. 달력에 수수께끼처럼 쓰여있는 다리들의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가 교이치로가 왜 신참자가 되어 니혼바시 일대를 맴돌았는지, <가가 형사 시리즈> 최대의 수수께끼이자 마지막 이야기가 마침내 베일을 벗는다.

 

1986년 시리즈의 첫 작품을 시작으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작가 인생 전반에 걸쳐 집필해 온 <가가 형사 시리즈>의 10번째 작품이자 마지막 이야기 [기도의 막이 내릴 때]가 드디어 출간되었다. 정말 마지막인 것처럼, 그 제목도 작별을 의미하는 것 같아 작품을 읽기 전부터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하다. <가가 형사 시리즈>의 구판부터 최근 출간된 개정판까지 전부 소장하고 있지만, 정작 읽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친근함에,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작품에서 그를 만날 수 없다는 인사에 아쉬움까지 느껴진다. 뛰어난 능력으로 냉철하게 사건을 수사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형사 가가 교이치로. 다른 시리즈를 건너 뛰고 읽어도 스토리 자체의 매력이 넘치지만 가가 형사와 그의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는 [붉은 손가락]을 읽은 후 접한다면 한층 작품 속으로 빠져들기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 [붉은 손가락]에서 등장한 고독사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기도의 막이 내릴 때]에서는 중점적으로 다루어져, 마치 마지막이기 때문에 더욱, 가가의 가슴에 응어리져 있을 어떤 감정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문제는 한 여성의 등장이었다.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였음에도 돈을 모두 빼돌려 도망친 여자. 그 여자가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갑자기 '발견'되었다. 그 여성이 친구의 어머니인 것 같다고 추측한 오시타니 미치코. 친구가 연출가로 이름을 날리는 도쿄로 향해 어머니인 것 같은 인물이 경찰과 약간의 문제를 일으킨 것 같다고 알려준다. 전혀 상관없다고 이야기하는 친구 아사이 히로미. 그녀는 어머니가 가출한 후 빚독촉에 시달린 아버지가 투신자살한 후 시설에 맡겨져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그리고 오시타니 미치코는 아사이 히로미와 헤어진 직후 실종, 살해당한다. 작품 전반에 흐르는 묘한 어조는 아사이 히로미에게 어떤 사연이 있음을, 그녀가 직접 오시타니 미치코를 죽였거나 혹은 그녀의 죽음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대체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 것인가, 긴장된 마음으로 페이지를 펼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가슴아픈 전개로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을 남긴다.

 

가가 형사가 등장해 사건 추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가 전면에 나선다는 느낌이 적다. 그에 비해 사촌동생이자 형사인 마쓰미야의 시선에서 주로 전개되기 때문인지 오히려 그가 가가 형사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어머니와 인연을 맺은 와타베 슌이치. 두 사람 모두 자식에 대한 한없는 사랑으로 자신들의 나머지 시간을 희생했다. 양쪽 모두 자식들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라 그 마음만은 짐작이 가고도 남지만, 결말 부분에서 직접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켜봐야했던 아사이 히로미의 심정 또한 안타까웠다. 모든 어려움을 딛고 성공을 거머쥔 여성 연출가의 비극적인 가족사와 가가의 가족사,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자신을 숨긴 채 조용히 숨죽이며 살아온 부모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뭉클한 감동을 선사한다.

 

아직 읽지 못한 <가가 형사 시리즈>가 많이 남아있지만 부디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취소하고 새로운 작품이 출간되길 기대한다. 여기까지 1부, 어머니의 죽음의 진상을 알게 된 후가 2부라는 명목으로. 가가도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면서 더 멋진 형사로 거듭날 수 있지 않겠는가. 계단을 밟아가듯 차근차근 전개되는 사건 전개에 심금을 울리는 정서까지. 마지막이 아니라면 좋겠지만, 마지막이라면, 그 대미를 장식하는 멋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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