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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가끔 가족들로부터 '책을 왜 읽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친구는 물론 가족 중에도 저처럼 책을 읽는 사람이 없어서,
늘 무언가 읽을거리를 옆에 끼고 사는 제가 신기한가봐요. 제 대답은 '재미있으니까'입니다. 당연하잖아요. 재미있으니까 책을 읽지, 누가 재미도
없는데 책을 읽나요. 육아하기에도, 아이를 낳은 후 늘 부족했던 잠을 보충하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말이에요. 심지어 아이들을 재우면서 같이
잠들었다가도 새벽에 눈 비비며 일어나 책을 읽는데, 그게 말이 쉽지 자다 깨서 책을 펼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힘든 일을
재미도 없는데 계속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 다음 뒤따르는 질문은 '책을 그렇게 읽어서 어디다 쓰냐'입니다. 책을 읽어서 어디다 쓰냐니, 그런
건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이야기를 읽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느끼는 그 자체가 소중한데 독서가 꼭 어딘가에 쓰여야 하는 건가요.
이렇게 대답하면 '그럼 쓸 데 없이 책을 왜 읽냐'는 본래의 질문으로 다시 되돌아오는데, 말씀드렸잖아요! 재미있으니까
읽는다고요!
저자 스벤 브링크만은 인문학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야기합니다. 인문학을 포함한 많은 학문은 그 쓸모없음 덕택에 쓸모가 있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쓸모만 따져서는 안된다고 해요. 놀거나, 사랑을 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돕는 것은 그런 행동을 통해
다른 이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들이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이 사랑을 통해 나는 무언가를 얻어야해!'라고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아이들을 사랑하면서 '이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주면 나는 무엇을 얻을까'를 생각하지는 않죠. 우리 삶에 진짜 알맹이가 되는
것, 의미를 주는 것은 요즘에는 쓸모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것들,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현상을 다루기에 중요합니다. 스벤은 책 전반을 통해
상황을 통해 바뀔 수도 있는 '진정한 자신'을 찾는 데 몰두하기보다, 선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윤리적 가치로서
선은 그 자체가 목적이지만,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보다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는 수단이니까요. 비도구화, 그것이 핵심입니다.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스벤은 이렇게 쓸모 없는 것의 쓸 데 있음을 역설하면서 선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그런 그의
소개글은 자연스럽게 제1장 아리스토텔레스의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 우리에게 있는가>로 연결됩니다. 위대한 반도구주의 사상가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 모든 것을 이득을 재는 저울로만 측정해서는 안되며, 이득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가 '해야만 하는'일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그 자체로 목적이면서 선한 것들이 있다고요.
우리는 선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면서 우리 삶을 이끄는 관점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선한 것은 그걸로 이익을 얻거나, 단순히 그걸 좋아하기 때문에 선한 게 아닙니다.
우리는 바로 선하다는 이유 그 자체 때문에 선을 좋아하는 법을 배워야하고,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내내 단단히 지켜야 할 실존적 관점입니다.
이 책에 소개된 다른 철학자들의 문구에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제가 유독 이 첫 장에 집착하게 된 이유는 바로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내용 때문입니다. 나의 발자취가 우리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요즘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거든요. 우리 아이들이 나와 남편의 무엇을 보고 자라나게 될까, 무엇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이 삶을 살아가게
될까와 관련된 고민은 지금까지 제가 부딪쳐왔던 문제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어요. 부담감, 중압감.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을 통해 얻은
것 같습니다. 선하다는 이유 자체로 선을 좋아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렇게 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 깊은 울림을 주는 깨달음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외에 아홉 명의 철학자가 더 출현합니다. 그 자체로 가치 있기 때문에 우리가 기댈 만한 단단하고 기본적인 토대가
되어주는 10가지 생각들. 여기에 그들과 그들의 신념을 소개해봅니다.
1. 우리가 그 자체를 위해 하는 것이
선이다(아리스토텔레스)
2. 존엄성은 가격으로 따질 수도 없고 대체될 수도
없다(칸트)
3. 인간은 약속하는 동물이다(니체)
4. 자기란 관계 그 자체와 관계하는
관계다(키르케고르)
5. 진리가 존재하지 않더라고 인간은 진실할 수
있다(아렌트)
6.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일은 그의 삶 무언가를 손에 쥐는
일이다(로이스트루프)
7. 사랑은 우리 자신 외에 다른 무언가가 실제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가능한 무척 어려운 깨달음이다(머독)
8. 용서는 오직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일이다(데리다)
9. 자유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루어진다(카뮈)
10.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몽테뉴)
삶에 있어 효용성을 최대의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 읽는다면, 단 1초만에 책을 던져버릴지도 모를 내용들입니다. 스벤이 되도록 쉽게
설명하고자 노력한 흔적은 엿보이지만, 하나의 사상을 설명하는 데 쉬울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 때로는 문장을 여러 번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장을 읽는 자체로 행복하다고 할까요. 오랜만에 철학과 삶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마음이 벅찼습니다.
갈수록 그 가치가 희석되는 도덕적이고 가치있는 삶에 대한 증명. 삶의 공허함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10명의 사상가의 이야기들을 통해
나에게 삶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가치를 지니는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스벤은 감사의 말을 '제가 단단히 딛고 서기로 선택한 관점의 모든 원천이 된 부모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데요, 이 부모님도, 스벤도 정말 멋지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