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개정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내 야에코, 아들 나오미, 치매에 걸린 어머니와 함께 사는 마에하라 아키오. 어느 날, 빨리 집에 돌아오라는 아내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무슨 일인가 싶어 귀가한 그의 앞에 어린 소녀의 시체 한 구가 놓여있다. 범인은 그의 아들 나오미. 평소 참을성이 부족하고 폭력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아들이 이런 큰 범죄를 저지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키오는 당장 경찰에 자수하자고 아내를 설득하지만 그녀는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반대한다. 결국 소녀의 시체를 근처 공원 화장실에 유기한 아키오. 소녀의 옷에 묻어있던 그의 정원의 잔디들을 다 떼어내지 못하고 돌아온 아키오는 언젠가 경찰이 분명히 자신의 집에 찾아올 것을 예감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태연히 밥을 먹고 게임에만 몰두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심정은 참담하지만, 나오미는 물론 자신과 가족들의 평판까지 생각할 때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구부정한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소름끼치는 한 가지 생각. 이 일이 성공하더라도 그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평생을 죄책감과 고통 속에 살아야할 것이다. 하지만 일단은 상황을 벗어나는 것만 생각하자.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 형사 '가가 교이치로'가 10년만에 귀환했다. 현대문학에서 '가가 형사' 시리즈의 전면 개정판이 출간되었고, 또 다른 출판사에서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 출간된다. 실로 히가시노 게이고, 아니 '가가 형사' 시대의 도래라고 할 수 있을만큼 돌아온 그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엄청나다. 나도 구판을 전부 소장하고 있지만 개정된 책을 보고 있노라니 어찌 구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책을 좋아하고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한다면 저절로 손이 갈 수밖에 없는 시리즈. 그 중에서도 부모로서, 딸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붉은 손가락]을 먼저 만났다.

작품을 다 읽고난 마음은 참담하고 슬프다. 과연 부모로서, 아들로서 아키오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그것 뿐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그런 그의 모습을 마주하며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만약 우리 아들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 죄 앞에서 절대 도망치지 말자고. 밤에 누웠을 때 발 뻗고 자지 못할 일은 하지 말자고. 자식들도 한 인간인만큼 어떤 상황에서의 선택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불러오거나 범죄에 가담하게 된 경우에는, 부모인 이상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나눌 수밖에 없다. 시즈쿠이 슈스케 작가가 [염원]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금까지의 평온한 시간과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앞으로의 삶을 자식과 함께 속죄하는 시간으로 채울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자식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들로부터 속죄할 기회를 빼앗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답은 나온다. 진심으로 자식을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아키오와 야에코인가, 아니면 그의 어머니인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 [나이먀 잡화점의 기적]을 최고로 꼽는다. 미스터리하면서도 인간과 삶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붉은 손가락]을 읽고 나니 어째서 수많은 독자들이 '가가 형사'에 열광했는지 알 것 같다. 사건에 대해 통찰력이 있고 날카롭게 분석하면서도, 진실을 드러내는 과정에서는 결코 인간미를 잃지 않는다. 탐문수사를 펼치면서도 억울한 소문에 휘말리지 않도록 배려하고, 아키오가 그 자신을 위해 스스로 죄를 실토할 수 있도록 모든 상황을 설계한다. 그런 그가 어째서 죽음을 앞둔 아버지의 병상에는 찾아가지 않는 것인가, 의아했다. 그의 가족도 아프고 괴로운 사정이 숨어 있을 거라 감히 짐작했는데, 결말을 읽고 나니 그제서야 이해가 된다. 그는 정말 지독하게도 타인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려는 남자다.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시대를 뛰어넘는 멋진 작품이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이름이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될만하다고 다시 한 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장에 꽂힌 구판 도서들에게는 약간 미안하지만, 역시 예전에 읽지 않고 남겨두길 잘했다. 아직 읽을 수 있는 '가가 형사' 시리즈가 남아있음에 무척 기쁘다. 너무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을 정도. 한 권씩 개정판으로 읽어나가면서 가가 형사의 매력에 풍덩 빠져들어가보겠다. 그의 유혹을, 더 이상 마다하지 않으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