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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로망, 로마 ㅣ 여행자를 위한 인문학
김상근 지음, 김도근 사진 / 시공사 / 2019년 6월
평점 :
결혼하기 전에 여행을 많이 다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생각처럼 여행을 다니기가 쉽지 않다고. 나는 당시 작가 오소희님의 책을 읽고 마음만 먹으면 나도 작가님처럼 가뿐히(?) 떠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혼 전 그토록 가고 싶었던 이탈리아와 프랑스 여행이 사정이 여의치 않아 무산되었어도 결혼하고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다니리라! 장대한 결의를 다졌던 것이다. 그런데 곰돌군 두 명이 태어나고 보니, 여행은 커녕 내 몸 하나 돌보기도 쉽지 않다. 경제적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 결혼하기 전에는 온전히 내 주머니 상황만 고려하면 됐는데, 이제는 여행 한 번 떠날라치면 이런저런 가정행사나 아이들 건강상태, 남편 휴가 등 따져야 할 것이 오만가지다. 게다가 챙겨야 하는 어마어마한 짐의 무게란. 나는 걱정을 안고 사는 엄마라 어디를 가든 아이들 짐이 한가득인데, 그 짐을 가지고 어디 유럽을! 이러다보니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저 멀리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책 제목이라니. 이탈리아는, 로마는, 작가에게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로망이다.
여행을 하는 데 있어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는지도 매우매우매우 중요하겠지만, 무엇을 볼 지 선택하는 것은 엄청난 기쁨일 것이다. 그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겠지만, 이 책 [나의 로망, 로마] 에서처럼 역사와 고전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나는 무조건 떠날 것 같다. 저자는 방문한 장소들을 역사나 고전들과 연관지어 설명해주는데 그야말로 살아있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들려주는 셈이다. 그런데 첫 번째 방문지로 테르미니 역의 맥도널드를 소개하고 있어 좀 의외였다. 이곳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맥도널드 중에서 가장 오래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매장이다. 약 2,400년 전의 로마 건축물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인데 이 고대 로마의 건축물을 '세르비우스 성벽'이라고 부른다. 역사적인 유물 바로 옆에 맥도널드라니! 이곳의 맥도널드는 이탈리아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것인데, 이방인들의 유입을 막기 위해 세르비우스 왕이 만든 성벽 앞에서 지갑을 여는 이방인들을 보며 저자는 로마가 처음 시작될 때의 모습을 떠올린다고 했다.
다소 초라했던 로마의 시작을 떠올리며 이야기는 스페인 계단에서 포에니 전쟁, 로마 공화정의 역사를 회고하며 흘러간다. 참된 인간의 의무를 논하는 포로 로마노와 캄피돌리오 광장, 그 유명한 카이사르의 삶과 죽음을 논하는 라르고 아르젠티나를 거쳐, 로마 제국의 쇠퇴를 이야기하는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과 카라칼라 욕장 등을 둘러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르네상스. 책 후반부에서는 로마에서 볼 수 있는 예술작품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풍부한 자료와 해석으로 그 매력을 더하고 있다. 책 전반에는 인문고전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마치 과거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웅대함마저 느껴진다.
앞서 이야기했던대로 어디 가서 뭘 먹고, 어디에서 자면 좋은지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 아니다. 책 전체가 인문학적인 이야기로 눈부신 아우라를 뽐낸다. 글자는 빼곡히 박혀있고, 줄 사이 간격마저 촘촘하다. 읽는 데 시간이 다소 걸리기는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면 로마에 대해 로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직접 가보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갈증은 해소될 것이다. 앞으로 이탈리아에, 로마에 가고 싶어질 때마다 이 책을 들춰보게 될 것 같다. 오래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