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의 관계사에서 댓글 모니터링 업무를 맡고 있는 여자. 게시물 규정에 어긋나는 댓글을 찾아내거나 이미 신고 받아 들어온
댓글들을 직접 확인하고 블라인드 처리하는 일이다. 욕설, 도배, 영리 목적, 개인 정보 노출, 음란 성인광고로 도배된 댓글들을 하루종일 쳐다보며
삭제하는 일들. 그런 그녀가 직장 근처 오피스텔로 이사한 지 얼마되지 않은 때, 새벽에 초인종이 울렸다. 낯설고도 기괴하게. 이 새벽에 누가,
무엇 때문에, 혼자 사는 직장 여성의 집 초인종을 누른단 말인가. 공포와 불안감으로 현관에 달린 렌즈를 통해 살핀 새벽의 침입자는 어떤
남성이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회사원의 행색. 급기야 남자는 여자의 집 도어락의 번호판을 열심히 누르기 시작한다. 이게 웬일인가! 남자가
돌아가고 그 새벽이 아침이 된 후 여자는 자신이 꿈을 꾼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는다. 그는 오피스텔 성매매를 하러 온
소비자였음을. 그 후로도 찾아오는 새벽의 방문자들. 여자는 이제 두려움을 접고 그들을 관찰한다.
표제작 [새벽의 방문자들]을 읽으면서 여자의 떨리는 마음을 나도 따라 같이 느꼈다. 새벽에 초인종을 누르는 남자라니. 그 초인종
소리와 도어락의 번호판을 누르는 삐비빅 소리. 그 소리가 실제로 들리는 것만 같아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예전에 직장 근처에서 잠시 자취하던
무렵, 모르는 남자가 따라온 적이 있었다. 봉고차를 타고 지나던 남자가 나에게 무어라 말을 했고, 나는 무서워서 그냥 무시했다. 그런데 내가
사는 오피스텔 1층에 가보니 그가 엘레베이터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공포심에 사로잡힌 나는 1층에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한참을 서성거렸고,
주변을 살피며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간신히 집에 들어갔다. 그 밤 내내 나는 누군가 현관문을 여는 것 같은 환청에 시달려야 했다. 새벽의
초인종은 그런 것을 의미한다. 공포, 두려움, 생명의 위협.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새벽의 방문자들은 성매매의 '소비자'로 여겨진다. 자꾸만 찾아오는 남자들을 보면서 여자는 비디오 폰 속
남자들의 얼굴을 프린트해 벽에 붙여놓았다. 그 옆에는 간략한 인상과 나름의 기준으로 판단한 점수를 써놓았는데 어느 날 여자는 그 비디오 폰
속에서 헤어진 남자친구를 발견한다. 그는 언제부터 이런 곳을 찾아다녔을까. 결혼하자더니 나와 사귀는 동안에도 그런 것인가. 그런 그녀를
'읽다가' 나는 잠든 남편을 바라본다. 설마.
작가노트에서 장류진 작가는 여성과의 관계를 돈 주고 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별로 인간 취급을 해주고 싶지 않다고 토로했다.
같은 인격체인 여성을 구매 가능한 서비스 재화로 생각하는 사람을, 왜 같은 인격을 가진 인간 취급을 해줘야 하는 거냐고. 작가는 주변에서 이런
일에 대해 공공연히 밝히는 사람을 여럿 만나본 모양이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아직 그런 뻔뻔한 인간을 만난 적이 없다. 만약 그런 사람이
바로 눈 앞에 있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지만, 그 사람이 눈 앞에 있게 된다면 조용히 이 책을
내밀어야겠다. 이 표제작과 그리고 작가노트를. 그가 부디 무언가 알아채는 정도의 머리는 있는 사람이길 바란다.
[현남 오빠에게] 이후 두 번째 페미니즘 작품집이다. [눈 깜짝할 사이 서른 셋]으로 눈도장을 찍은 하유지 작가의 <룰루와
랄라>는 무례한 상사에게 한 방 먹이고 자발적으로 잘리는 모습을 통쾌하게 그려낸다. 착하고 소소한 인물들과 사건들로 이루어진 '생계밀착형'
멜로드라마를 쓰는 작가로 평가받는 그녀의 글은, 이번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지는 한편 따뜻하게 진행된다. 이 밖에도 연애라는 이름으로 마음에도
없는 섹스를 해야 하는 미성년 '나'와,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느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상실한 애인과 친구를 떠나는 '보라', 학교 복도에
포스트잇을 붙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길 바라는 '유미', 결혼을 꿈꾸며 함께 저축한 데이트 통장을 전 남친에게 털리고 멘탈도 함께 털린
'나'가 등장하는 이야기들. 결코 픽션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여섯 편의 이야기들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깊이, 본격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페미니즘이 별건가. 너와 내가 함께 잘 살기 위해 내 입장도 한
번쯤 생각해봐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같은 성별에 있어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라는, 다른 성별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일 뿐. 그것을 너는 여자니까 안돼, 너는 여자니까 이래도 돼-라며 기준 짓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애초에
여자이고, 남자인 것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가 처한 위치를 무시하지 않고, 하나의 생명으로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한다면 지금처럼 서로 물고 뜯는 싸움판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러므로 페미니즘 테마소설이라 이름지어진 이 책도,
단순히 여자의, 여자들을 위한, 여자들에 의한, 이야기가 아니라 너도나도 함께 읽고 차이와 입장을 이해하는 계기로 생각하면 멋질 일이다. 저
황량한 들판에서 황망한 얼굴로 서 있는 얼굴을, 여자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인식하고 따뜻하게 안아주면 될 일이다. 내가 너무 단순한가.
그런데 복잡하게 살 거 뭐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