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치 음대 가을 정기 연주회에서 콘서트마스터를 맡게 된 기도 아키라. 밀린 학비 제출 기한의 연장과 장학금 수여, 명기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연주할 수 있다는 열망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얻은 성과였다. 세계적인 라흐마니노프 연주자인 쓰게 학장의 손녀이자
첼리스트인 쓰게 하쓰네와 프로의 길을 걷기 위해 연습에 매진하지만, 완전 밀실에 보관되어 있던 시가 2억 엔의 첼로 스트라디바리우스가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삼엄한 경비 속에 보관되는 첼로가 도난당하다니, 학생들 사이에서는 결국 범인은 교내의 인물이라는 소문이 돌고, 정기
연주회를 위해 선발된 오케스트라 멤버들 사이에서도 긴장감이 감돈다. 게다가 쓰게 학장에게 맞춤으로 제작된,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피아노가 파괴되고, 목숨을 위협하는 듯한 경고장까지 날아들면서 정기 연주회의 개최 여부까지 미궁 속으로 빠진다. 과연 범인의 목적은 정기
연주회를 중지 시키기 위한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가. 과연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런 일을 벌이는 지 모두가
궁금해하는 가운데, 마침내 가을 정기 연주회 당일이 되었다.
[안녕 드뷔시] 로 2009년 제 8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수상한 나카야마 시치리가 두 번째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인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 로 돌아왔다. 이미 나에게는 마성의
작가, 거역할 수 없는 압도적인 몰입감으로 수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인 나카야마 시치리. 이제 그도 히가시노 게이고처럼 그 이름만으로 하나의 장르가
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것 같은 느낌이다. 사회파 미스터리로 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코지 미스터리로 추리의 아기자기한 면모를 자랑한다면,이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에서는 음악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눈 앞에서 연주를 듣는 것 같은 풍부하고 섬세한 묘사로 독자들을 압도한다.
달린다, 심장 박동이 선율과 동조한다, 허공을 찌르는 활, 무너지는 건반-같은 표현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나의 호흡도 연주와 하나가 되어
가빠지는 것이 느껴진다. 가슴이 울렁거리고 어느새 무호흡 상태. 작품 속 연주가 끝나고나서야 나의 호흡도 다시 시작된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내 머릿속 연주회에 박수를 치고 말아야 하는 것 같은 환희와 격정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미사키 요스케가 등장해 사건을 깔끔하게
해결하는 작품이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잘자요, 라흐마니노프]는 음악가가 되기 위한 청년들의 분투와 그로 인한 짙은 서정성이 깊게
표현되었다. 음악인으로서 연주를 계속 하고 싶은 마음, 그러나 생활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취직을 선택해야만 하는 현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고 끝까지 달려야 하는 청춘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뜨겁고 애달프게 적셔온다. 일본 만화 [노다메 칸타빌레]를 무척 좋아해서 드라마와
영화도 챙겨보았는데, [노다메 칸타빌레]는 음대생들의 밝은 모습에 주력했다면 작가의 이 작품은 그들의 비애와 침통함이 글 속에서 그대로 음악으로
연결되어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음악으로 전달하기 위한 열망. 그 열망이 불덩이처럼 솟아올라 단번에 나를
꿰뚫어버렸다.
그 동안 나카야마 시치리가 선보인 작품의 분위기가 매우 다양하다. 히포크라테스 시리즈,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와타세 경부 시리즈,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까지 각양각색. 여러 시리즈에 반해 미사키 요스케 시리즈는 [안녕, 드뷔시]를 읽고 사실
특징이 조금 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웬걸. [잘 자요, 라흐마니노프]를 읽고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비단 추리와
미스터리가 아님을 깨달았다. 과연 범인은 누구인가도 궁금했지만 책을 읽는 동안 어느새 그런 것은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스토리에 집중했다.
가슴을 요동치게 만드는 감동, 울컥하게 만드는 한 편의 장대한 드라마. 미사키 요스케는 그 드라마에 어울려 그저 함께 녹아들 뿐이다. 부드럽지만
강인한 캐릭터. 작가가 창조해 낸 세계 속에서 단연 매력적인 인물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 수밖에 없는 작가와 작품이다. 예고된
바에 따르면 7월 말에는 변호사 미코시바 레이지 시리즈 [악덕의 윤무곡]이, 8월에는 시즈카 할머니 시리즈 [시즈카 할머니와 휠체어 탐정] 이
준비되어 있다. 빨리 만나고 싶은 조급한 마음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저 이 작가가 건강하게 장수해서 부디 되도록 많은 작품을 선보여주길 바랄
뿐이다. 어서 작품 중 하나라도 집어드시라. 미리 환영한다. 이미 작가와 출판사의 덕후가 된 당사자로서 이제 그의 덕후가 된 당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