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인간의 탄생 - 세기전환기 독일 문학에서 발견한 에로틱의 미학
홍진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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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독일은 산업혁명과 함께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눈에 보이는 영역 뿐만 아니라 산업혁명의 토대가 된 자연과학의 영향 아래에 철학과 문학, 예술과 종교도 엄청난 변화에 직면했으며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는 전통적인 관점 또한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문학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문학을 한 시대의 사회적, 문화적 영향하에 생성된 것으로 본다. 덕분에 문학의 변화 뿐만 아니라 독일의 사회와 문화도 함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기서는 19세기 후반에 형성된 새로운 인간관을 중심으로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 독일어권 문학이 어떠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를 개관한다.

사실 평소 독일문학에 그리 관심이 깊었던 것은 아니다. 문학 자체에 지식이 깊은 것도 아니고 역사적인 위치에서 독일의 입장을 조금 알고 있을 뿐, 독일 내의 전체적인 변화에도 무심하다. 그런 내가 이 책에 호기심을 가졌던 이유는 표지 그림 때문이었다. 황금의 화가로 불리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다나에>. 오스트리아를 여행할 때 직접 본 클림트의 그림들은 정말 좋았고, 그의 그림에 대해 지식을 가진 어떤 이의 설명으로 인해 작품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후 클림트의 그림에 예전보다 더 매력을 느꼈는데 이 책과 클림트의 그림은 과연 어떤 연관이 있을까, 가 궁금했다.

흔히 '세기전환기'로 일컬어지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독일어권 문학을 살펴보는 데 클림트의 작품들이 흥미로운 이유는, 성과 에로틱이 당대 예술과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떠올랐으며 클림트의 그림들이 그런 문화적 현상을 매우 잘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1900년 [꿈의 해석]을 발표하면서 인간의 정신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 정신의 본질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 발달의 원동력을 성 욕망에서 찾고 있었다. 그 외에도 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와 펠릭스 잘텐, 토마스 만, 프랑크 베데킨트 등의 작가들도 성과 에로틱에 관심을 가지고 비윤리적 성관계를 그리는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 동안 금기시됐던 성과 에로틱이 이 시대에 어떻게 주류 문학과 예술에서 핵심적인 주제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욕망하는 인간의 탄생]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며 더불어 독일제국의 수립과 산업혁명의 역사적인 배경까지 함께 설명한다.

책은 총 3부로 나뉘어 1부에서는 <19세기 중반 이후 독일의 사회, 문화적 상황>, 2부에서는 <자연주의가 보여준 사실의 문학>을, 3부에서는 <세기전환기 독일 문학의 에로틱과 예술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19세기 후반은 독일에서는 수세기 동안 이어져 온 기독교적 세계관과 인간관이 붕괴되고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바라보는 새로운 인간관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는 자연과학과 객관적 사실에 대한 열광이 식으면서 가치의 중심을 인간의 내면, 인간 개체의 본질 속에서 향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성이 어떻게 대두되었는지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1부에서 3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작품을 토대로 어떤 변화 양상을 보이고 있는지를 설명한다.

완전 문외한인 내가 읽어도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그래도 용어나 작가에 익숙하지 않은 비전공자가 읽으면 어느 정도는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읽어본 독일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라서 이 책에 실린 작품들 전부 생소했지만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함께 변해가는 문학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꽤 즐거웠다. 마치 살아 숨쉬는 문학을 접한 기분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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