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의억. 나노로봇에 의한 기억 개조 기술이 만들어낸 가공의 기억이 존재하는 세상. 허구를 세상 무엇보다 사랑했던 치히로의 부모는 그가 있는 현실보다, 그가 없는 허구에서 살아가기를 더 원했다. 의억으로 이루어진 세상에 사는 부모를 바라보는, 의억이 하나도 없는 세계에 있는 소년은 늘 혼자였다. 진짜 사랑도 가짜 사랑도 알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된 치히로는 열아홉이 된 어느 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다가 그 어떤 즐거운 추억 하나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삶에 회의감을 느낀다. 그의 선택은 의억을 구입하지는 않으나 아무것도 없는 인생을 잊어버리기 위한 '레테' 구입. 주문한 '레테'를 단숨에 먹어버렸지만, 어째서인지 그에게 도착한 것은 '그린그린'이었다. 청춘 콤플렉스 해소를 위해 이용되는, 가공의 청춘 시절을 사용자에게 제공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그린그린. 그 후 치히로에게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지만 소중하게 기억되는 소꿉친구가 생겼다. 그녀의 이름은 나쓰나기 도카.

순간순간 자신의 머릿속을 헤집어놓으며 마치 정말 있었던 일인 것처럼 기억이 순식간에 눈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여름축제에서 나눈 키스, 부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교실에서 단 둘이 남았을 때의 달콤함, 도카와 친구가 된 계기,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서재에서 들었던 음악들과 서로 기댔던 등에 전해져오는 따스한 감촉 등. 도카에 관한 모든 것이 치히로의 오감을 자극하며 그녀는 실재한다고, 어서 그녀를 찾아내라고 재촉한다. 의억 속 인물이라고 치부하지만, 숨길 수 없는 그리움으로 혼란스러운 치히로 앞에 마침내 실재하는 도카가 나타난다. 그가 사는 바로 옆집에.

누구나 한 가지쯤, 아니 몇 가지쯤 잊고 싶은 기억이야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또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기억. 그 기억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지 못해 우리 모두 이불킥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부끄럽고 아픈 기억이라도 그 기억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지금의 우리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인가. 그 당연한 의문 앞에서 자신의 기억 일부라도 삭제하기 위한 결심을 한 치히로의 인생은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웠던 것일까. 의억이라고, 가짜라고 외치면서도 한편으로는 도카가 진짜인지 확인작업에 나서는 치히로의 모습 그 자체가 온몸으로 자신도 행복하고 싶었다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단 한 명이라도 필요했다고 외치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찌르르 울려왔다.

행복한 기억이 있다면 얼마든지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다. 의억에 도움을 받아도 좋다.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기억은 어느 정도 현실 세계에 발 딛고 살 수 있을 정도의 도움만 주면 된다. 의억이 만들어낸 세상을 음미하며 허구의 세상으로 숨어버린 치히로의 부모는 죽어있는 것과 다름없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반문한다. 만약 그린그린과 레테가 있는 세상이라면 당신들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진짜의 세상에서 고통을 감수하며 살아갈 것인지, 허구의 세상에서 행복만을 맛보며 살아갈 것인지 말이다. 과연 어느 쪽이 행복할까. 선택은 개인의 몫이겠지만 작가는 작품의 결말로 자신의 대답을 대신하는 듯 하다. 그런 점에서 [너의 이야기]는 SF 장르 소설이자, 한 소년과 소녀의 로맨스이며, 선택의 기로에서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소년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마음이 갈 곳을 헤맸다. 내가 치히로인 것 같아서, 또 도카가 된 것만 같아서. 이 세상 어딘가에 운명의 상대가 있기를 바라는 그들의 외로운 마음이 절절해서. 그들이 서로에게 내민 손을 꼭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들의 손이 서로에게 닿았다면 그건 그린그린이나 레테 덕분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간절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실현시킨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세상의 중요한 일은 마음이 원하기 때문에 이루어지고, 그것은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음은 허구가 아닌 지금 여기, 현실에 존재한다

미아키 스가루의 작품은 처음이다. 사실 [너의 이야기]보다 더 궁금했던 것은 [수명을 팔았다. 1년에 1만엔으로]라는 작품이었는데, [너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궁금했던 작품을 오히려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일본 발매 이틀 만에 4쇄를 돌파한 데다, 2019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최종 후보작에 오른 작품. 그 명성이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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