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 - 고종 즉위부터 임시정부 수립까지
김태웅.김대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힘없는 왕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권력을 쥐기 전까지는 매우 조용히 살았다. 그에게 붙여졌던 별명인 '막걸리 대감', '상갓집 개'로 당시 그에 대한 인식을 짐작할 수 있지만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고 실권을 쥐게 되자 예전의 모습은 자취를 감추고 고종 대신 모든 정책에 대해 결정을 내린다. 흥선대원군은 전세, 군역, 환곡에 대한 개혁 정책을 발표하고 적폐의 중심에 있는 세도정치와 양반층의 기득권을 철폐하기 위해 힘을 쏟았으며 비변사 개혁과 세도정치의 기반이 되었던 서원을 47개만 남기고 모두 없애는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그가 기울인 노력과는 별개로 대원군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지 않은데 저자는 그 까닭을 대원군이 추구했던 국왕 중심의 부국강병 정책이 가진 한계 때문으로 보았다. 경복궁 중건에 대한 과다한 재정 지출과 외세에 맞서 싸우느라 사용된 각 지방의 군비 확충, 명성왕후와의 대립, 쇄국정치가 불러온 부정적인 측면이 후세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저자들은 여기에 의문을 제기, 한미 FTA 협상 시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던 'FTA반대=쇄국', '쇄국=망국'이라는 논리의 문제점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음을 제시한다.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는 고종 즉위 시기에 나타난 흥선대원군을 시작으로 임시정부가 수립된 시기까지 여러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 근대사를 재조명한다. 모든 챕터는 질문 형식으로 이루어져 기존 알고 있던 역사적 지식에 의문을 제기하며, 되도록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지식과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흑백논리를 지양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역사란 본래 어떤 입장에 서 있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저자들의 역사를 바라보는 유연한 사고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 되는 해, 어느 때나 그러하지만 특히 이 시기에 한국 근대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흥선대원군 이후 닫힌 빗장이 열리고 조선은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맞이한다. 그 와중에 일어난 청일전쟁은 양국이 주장하는 조선을 위한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우리가 입은 피해가 막심했다. 백성들은 기약 없는 피난길에 올랐고, 전염병이 돌아 전쟁에 참가한 양국 군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군인들이 지나간 길에는 약탈과 방화, 강간이 잇달았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으킨 나비효과의 결과였지만 일본의 야욕으로 일어난 청일전쟁으로 인해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은 조선의 외교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조약에 쓰여진 청으로부터의 우리의 '자주독립'은 청을 대신해 일본이 지배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고, 조약과 동맹을 통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거점을 탈취, 조정의 재정을 장악하려고까지 했다. 러시아의 간섭이 본격화되면서 왕비의 발빠른 태도로 러시아와의 외교관계를 강화해 일본 세력을 억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겨났고, 이는 결국 명성왕후 시해로 연결되는 참담한 결과를 낳는다.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의 시련은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의 승리로 제국주의의 시대를 활짝 열게 된다.

 

이어지는 명성왕후 시해와 러일전쟁, 을사늑약, 의병전쟁과 헤이그 특사, 그리고 마침내 빛나는 3.1운동이 일어난다. <데일리 메일> 특파원으로 유명한 의병사진을 찍었던 매켄지는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이라는 책으로 서구에 3.1운동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1919년 봄에 일어난 한국 국민의 평화적인 항일봉기는

세계적인 경이였다.

지금까지 세계 정치인에 의해 무기력하고 비겁하다는 별명과

딱지가 붙여져 왔던 한 나라의 국민이

이제 아주 높은 수준의 영웅심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들이 감옥에 끌려가면 다른 이들이 대신

그들 자리에 들어섰고

이들이 끌려가면 또 다른 이들이

그들의 일을 맡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책에는 민족자결주의라는 물결에 힘입어 일어난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이야기부터 당일 일어났던 일들, 전국에 만세운동이 확산된 것, 3.1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저지른 일제의 만행까지 기록되어 있다. 누군가가 끌려가면 또 다른 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그들이 끌려가면 또 다른 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큰 희생을 치렀지만 누구도 그 희생을 생색내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아름다운 이들의 모습이 여기에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대한민국이 탄생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역사를 공부하고 과거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고 현재를 살며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가슴 깊이 그 문장들을 받아들이면서도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다. 치밀어오르는 이 울분 외에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나에게는 항상 어려운 문제였다. 그런데 저자들의 말을 듣다보니 알 것도 같은 느낌이다.

안중군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공영을 위해 제안한

평화회의 구상은

당대에는 공허한 몽상이었을지라도,

100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동아시아의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비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까닭에 말 많고 탈 많은 한.중.일 3국이 다함께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주목하는 것이 아닐까?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아프고 치욕스런 역사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극적인 시간들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역사가 삶의 지혜를 제공하는 원천이며 지나온 과거가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매우 밀접한 관계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저자들의 말을 마음에 새겨본다. 한국 근대사는 다른 시대에 비해 어렵고 복잡하다고 여겨지지만 질문과 대화로 이어지는 이 책 한 권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한 시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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