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사연들 - 내가 모르는 단어는 내가 모르는 세계다
백우진 지음 / 웨일북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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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둘째 곰돌군을 낳은 후 저의 기억력은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흔히 아이를 낳으면 건망증이 심해진다고 하던데, 전 건망증 수준이 아니라 아예 들은 기억, 본 기억이 없는 거에요. 친정 엄마는 애 둘 보고 이것저것 신경 쓸 게 많아져서 그런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는데, 그 말씀에 납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합니다. 지금 임용공부를 다시 하라고 한다면 못할 것 같아요. 이런 때일수록 공부도 하고 하나하나에 집중을 해야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아침시간만 해도 아침준비하고, 첫째 곰돌군 어린이집 보낼 준비하고, 둘째 곰돌군 기저귀 갈고 수유, 아침식사, 첫째 곰돌군 깨워 아침 먹이고, 요즘들어 어린이집을 가지 않겠다며 떼를 쓰는 곰돌군을 달래 겨우겨우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면 멍-해집니다. 그래서인지 집중해서 책 읽는 것도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이것마저 놓으면 제가 정말 바보가 될 것 같아 어떻게든 책을 놓지는 않고 있는 상황이랄까요. 이 와중에 또 욕심은 있어서 올해는 깊이 있는 독서, 깊이 있는 리뷰를 남겨보자 다짐했는데 제가 알고 있고 사용하는 단어들에 한계를 느꼈어요. 그래서 선택한 책 [단어의 사연들]입니다.

 

사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다양한 단어들을 접하고, 몰랐던 단어들, 잘 사용하지 않았던 단어들을 제 머리속 사전에 기록하자는 취지였는데요, 제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책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상 외의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랄까요. 단어의 양에 집중하기보다는 단어가 탄생한 배경, 단어가 조합되는 원리, 사라진 단어를 기억해보는 과정의 기록이었습니다. 그 동안 단어가 사용되는 문맥, 단어의 양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있지만 정작 이 단어들의 이야기에는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분명 이 단어들에도 사연들이 있고, 각자의 이야기가 있었을텐데 말이에요.

하나의 단어를 붙잡으면

하나의 우주가 걸려든다

 

저자는 단어들을, <낱말의 문화>, <낱말의 유래>, <낱말의 규칙과 변화>, <낱말의 재발견> 네 챕터로 나누어 소개합니다. 우리 말에 있는 '억울하다'는 단어에 깃든 역사적 맥락, 한국어에는 있는 '때'라는 단어가 영어에는 없다는 것, 고양이와 나비 사이(나비라는 낱말이 고양이를 가리키는 호칭이 된 사연), 한국식 외래어, 사용은 커녕 있는지조차도 몰랐던 다양한 단어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해요.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풍부한 양의 자료들을 활용했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것이 아니라 여러 참고도서, 그림, 연구자료, 여러 나라 단어 등을 인용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단어가 숨기고 있던 이야기들을 살펴볼 수 있었어요.

 

책 자체는 소박해요. 눈에 띄는 표지도 아니고 두께도 그리 두껍지 않습니다. 하지만 책에 담긴 단어들의 사연,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에 귀기울이다보면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독자에 따라서는 조금 딱딱하게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단어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니 페이지가 금방 넘어갔습니다. 이 책을 읽고나니 우리가 쓰는 말들에 모두 귀를 기울이고 싶어졌습니다. 단어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면 타인의 말과 마음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희망을 품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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