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메시스의 사자 ㅣ 와타세 경부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0월
평점 :
아무 이유 없이 두 명의 소녀를 살해한 가루베 요이치. 그런 그의 어머니가 누군가에게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글자, 네메시스. 의분(義憤)의 여신의 이름이 남겨진 것을 단서로 수사가 시작되지만 또다시 다른 사건의 범인의 가족이 살해당한 채 발견되고, 사사로운 복수인지, 정의의 이름을 걸고 피해자 유족을 대변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와타세 경부의 묵직한 발걸음이 시작됩니다.

얼마 전 강서구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접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버린 청년과 그 청년의 부모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해자의 부모도요. 가족 중 한 사람이 저지른 범죄로 그 가족 전체가 피해를 입는 것도 어쩐지 부조리해보이지만, 이번 사건에서 그의 부모가 유독 비난을 받고 있는 이유는, 아들의 감형을 위해 우울증 진단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 유족의 입장에서 심신미약, 이라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이유일까요. 그럼에도 우울증 진단서를 들이밀 수밖에 없었던 가해자 부모의 마음도, 마찬가지로 지옥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희생자의 유족도, 가해자의 가족도 결국에는 모두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법이라는 것이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씁쓸한 기분이에요.
나카야마 시치리의 [네메시스의 사자]는 살인사건 피해자가 징역을 살고 있는 범죄자의 가족이라는 소재를 사용해 일본에서 논의되는 사형제도 폐지론, 피해자 유족의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고통, 가해자의 가족에게 가해지는 또 다른 폭력 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작가의 기존 작품들에 비해 자극적인 요소는 훨씬 덜해졌으나 깊이 면에 있어서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심오해졌다고 할까요. 피해자의 유족과 가해자의 가족, 양쪽의 입장에서 가슴에 사무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때 가루베만 사형됐다면 적어도 하루카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운명은 달라졌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왜 그런 놈을 살려둬야만 했을까요. 갱생은 고사하고 평생 감옥 안에만 늘러붙어 있을 그런 놈을 위해 왜 쓸데없이 세금과 인력을 낭비해야 할까요?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 묵직한 것이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아 답답했어요. 휘몰아치는 이 느낌을 글로 잘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눈만 뜨면 흉악한 범죄 소식이 들려오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 아기들을 어떻게 지켜내고 교육시켜야 할지 그 어느 때보다도 막중한 책임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기적이라고 해도, 그 무서운 바람에 저와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휘말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 모녀를 비난하던 사람들에게 아마 죄의식은 눈곱만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기는커녕 피해자와 유족의 원한을 갚는다는 명목으로 현관에 저속한 말을 써붙이고 의분에 불타 협박전화를 걸었을 게 분명하다. 정의의 이름 아래에, 복수 대행이라는 미명 아래에 가해자의 집을 찾아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퍼뜨린다. 그곳에 ‘천벌’이라는 말만 갖다 붙이면 면죄부가 될 거라고 믿으면서.
인간이 인간을 죽이고 한쪽이 가해자, 다른 쪽이 피해자라는 수식으로 끝나면 그토록 단순하고 속 편한 이야기도 없다. 그러나 시민의 삶 속에 감춰진 악의가 그렇게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정의의 가면을 쓰고 구호를 외치며 죄 없는 자와 이미 속죄한 자까지 공격한다.
와타세는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것은 자각 없는 악의가 아닐까 이따금 생각했다. 자각이 없으니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얼마든지 추악해질 수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 동안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라면 반가워할만한 인물이 여럿 등장합니다. 와타세 경부와 법의학 시리즈의 고테가와 형사, 법의관인 미쓰자키 교수님, 미코시바 레이지와 한판 승부를 경험한 미사키 검사와 간접적으로 언급됐을 뿐인데도 그 존재감을 숨길 수 없는 ‘그’ 역시. 어려 인물들의 등장은 작가의 팬인 독자로서 반갑기만 했는데요, 열일 하시는 작가님이시만큼 또 조만간 그들의 활약 또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