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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하게 산다는 것 - 불필요한 감정에 의연해지는 삶의 태도
양창순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0월
평점 :
남에게 기대지 않고 무엇이든 혼자 결정을 내리는 일에 익숙해질 것
무슨 일이든 자기 잣대로 판단할 것
결정은 마지막 순간에 내가 하는 것이고 그 책임도 오롯이 내가 지는 것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 저희집은 이사를 했고, 저는 전학을 갔습니다. 친한 친구들과 떨어진 낯선 환경 속에 뚝 떨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불안한데, 그런 저의 마음을 더 움츠러들게 만든 것은 한 무리의 여자아이들이었어요. 자신들은 이미 이 학교에 다니고 있었으니, 새로 온 너는 우리를 언니라고 부르라던, 지금 생각해도 기세등등한 그녀들의 위세는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기만 합니다. 당시만 해도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간단히 무시했던 저는, 이후 따돌림 아닌 따돌림을 당하게 되었어요. 곰돌군들을 낳고 키우고 돌보는, 이 새로운 삶이 시작된 이후 어느 밤 가끔, 그 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우리 곰돌군들이 헤쳐갈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 아기들이 겪을 학창시절에 어떤 상처들이 생길까. 그리고 그 때의 나는 그녀들에게 무슨 잘못을 했었을까.
저는 사람을 잘 믿지 않습니다. 결국 남은 남일 뿐, 지금 아무리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어떤 자그마한 일을 계기로 금이 갈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해요. 금이 간 사이는 결국 깨지게 되어 있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겉으로는 웃으면서 대하는 사람에게도 기본적으로 경계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저를 상처주거나 무시하는 기색이 보이는 사람은 제 스스로 차단하고 연락을 끊기도 해요. 사실 예전에는 이런 저조차도 무척 싫었어요. 나는 왜 남을 믿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까, 이러다가 내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저는 제 자신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어요.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 나를 소홀히 대해주는 사람과의 관계에 매달리기보다 나를 소중히 대해주는 사람, 나를 존중해주는 사람과의 관계에 중점을 두기로 했어요. 사람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것, 누군가와의 관계를 차단하는 것 등은 저의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덕분에 저는 제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담백하게 사는’ 것입니다. 양창순님의 [담백하게 산다는 것]을 읽으면서 저는 약간은 의심하고 있던 저의 삶의 방식에 조금은 위안을 얻게 되었어요. 저자가 말하는 내용이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과 조금은 다르더라도, 다르면 다른대로 또 많은 생각을 하는 시간이었고요. 잔잔하고 한결같은 면모, 덜 감정적으로, 덜 반응적으로 살아가는 마음가짐은 제가 희망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자존심은 내가 사는 집이다> 챕터였어요. ‘어떤 일에 대해 생각하고 만약 그것이 옳다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면 누구에게 물으러 가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톰 크루즈의 인터뷰 기사와 함께 건강한 자존심에 관한 조언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짝꿍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고 누군가와의 만남을 즐기는 짝꿍이, 요즘 들어 특히 인간관계로 힘들어하거든요. 저와는 달리 타인을 진심으로 믿고 싶어하고 상처받더라도 인간관계의 긍정적인 면을 지지하는 그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보면 인간관계란 우리가 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숙제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짝꿍도, 그리고 오늘도 어디선가 누군가와의 관계로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이들도 이 책을 통해 약간의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