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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욥기 43장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평점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중 두 번째로 접한 작품입니다. 전에 읽은 편혜영 작가님의 [죽은 자로 하여금] 이후 벌써 다섯 번째 핀 시리즈네요. [죽은 자로 하여금]도 결코 쉽지 않았는데, 이번에 읽은 이기호 작가님의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또한 저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온 작품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김복남 살인사건 전말]과 같은 스릴러인가 하고 기대했었습니다만, 스릴러나 미스터리보다는 한 사건을 둘러싼 인간의 본성과 존재 이유의 고뇌를 다룬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요.
목양면에서 교회가 있던 건물이 불에 타버린 사건이 발생합니다. 여러 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고 다행히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죠. 작품은 동네 주민들-목격자, 소방교, 식당주인, 목양교회 전도사, 사망한 최요한 목사의 아내, 그의 아버지인 최근직 장로 등-을 중심으로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고자 합니다. 그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인물은 바로 목양교회의 최요한 목사인데요, 그의 시신이 처음 불이 난 지점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가 방화를 저질렀다, 아니다 단순사고다 하는 점까지 논쟁의 불씨가 됩니다.
더불어 그의 생전 행보까지 주변인물들을 통해 밝혀져요. 누군가는 그가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자신의 절친한 언니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고 제보하고, 누군가는 약간은 소심하고 남들 앞에 나서는 걸 꺼리는 조용한 목사님이었다고 말합니다. 주목할만한 것은 이 최요한 목사의 출생입니다. 그의 아버지 최근직 장로는 신실한 종교인으로 아내도 그와 뜻을 같이 하는 봉사정신이 투철한 인물이었는데요, 어느 날 기차사고로 아내와 세 아이를 잃고 말아요. 절망의 밑바닥에서 몸부림치던 그가 한순간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새 삶을 시작했고, 또다시 가정을 이루어 최요한 목사를 얻었으며, 그로 인해 최요한 목사의 존재는 주의 은총, 축복, 기적으로까지 일컬어졌죠. 최요한 목사 아내의 증언을 보면 그는 그런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버지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진실인가, 자신이 생겨난 것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은 다음인가 전인가, 자신은 누구인가 하는 물음에 깊이 고뇌하고 있었다고요.
그의 출생의 비밀은 마지막 즈음에 밝혀지는데요, 작가는 독특하게도 조물주마저도 인터뷰의 대상으로 끌어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조물주의 목소리가 신성하고 경건하기는커녕 무게감도 부족하고, 마치 연세 많이 드신 동네 할아버님이 화내시는 전경이 떠올라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어요.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욥’이라는 인물을 소재로 최근직 장로의 인생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 작품 안에서, 거룩한 신은 그 모습을 잃고, 고귀한 성직자의 모습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립니다. 남겨진 것은 다른 신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고뇌, 존재의 이유에 대한 물음이었어요.
방화 사건이 벌어진 만큼 그 범인에 대한 궁금증도 배제할 수는 없었는데요, 마지막까지 읽고 난 다음에도 저는 범인이 누구인지 매우 아리송했습니다. 이 사람인 듯도 하고, 저 사람인 듯도 한. 마치 생(生)의 비밀스러운 부분처럼 범인 또한 감춰져 있고, 늘 그렇듯 독자들로 하여금 추측하게 만든다고 할까요. 흥미로운 작품이었지만 제가 내놓은 해석이 과연 어느 정도 작가의 의도에 가까울지는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는 난해하게 다가오는 핀 시리즈이지만, 앞으로 출간될 작품들의 작가 목록을 보니-정이현, 김금희, 손보미 등-이 시리즈에 대한 관심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