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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멈추는 법
매트 헤이그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평점 :
충격적인 내용으로 포문을 연 이 작품은 늙어가는 속도가 타인보다 현저히 느린 한 남자의 일생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1890년대에 명성이 자자한 한 의사에 의해 ‘에너제리아’라는 이름이 붙은 이 ‘병에 걸리면, 노화속도가 대개 정상인들보다 15배쯤 느려지게 되고, 면역체계가 강화되어 거의 모든 바이러스성 감염과 세균성 감염으로부터 안전해진다고 합니다. 겉은 소년처럼 보여도 속은 7-80대인, 보통 사람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사람이 존재하는 거예요.
톰 해저드는 ‘에너제리아’에 걸린 이후, 마녀재판에 의해 어머니를 잃고 런던에서 로즈와 그레이스 자매를 만납니다.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결국 로즈와 사랑에 빠지고 둘 사이에 딸 매리언까지 두게 되죠. 하지만 주변의 시선과 소문은 결국 그들 가족을 위험에 빠트리고, 톰은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떠납니다. 여러 곳을 방황하다 전염병에 걸린 로즈의 마지막을 지키면서 딸 매리언이 자신과 같은 증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사라져버린 딸을 찾기 위해 수많은 시간을 보내요.
그 와중에 만난 헨드릭은 톰에게 접근해 자신도 그와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 중 하나라며, 앨버트로스 소사이어티에 들어올 것을 권유합니다. 딸 매리언 찾는 것을 도와주겠다면서 접근한 그를 뿌리치지 못하고, 톰은 8년에 한 번 삶의 터전을 옮기며 조직이 원하는 일에 협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 그는 고등학교 역사 교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그의 존재를 위협하는, 그에게 사랑에 빠질 것을 예감하게 하는 여자 카미유와 함께.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으로 영화 제작 확정이라는 매우 반가운 소식과 함께 출간된 [시간을 멈추는 법]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노화 속도가 느린 그가 겪은 다양한 경험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들-셰익스피어, 스콧 피츠제럴드 등-과 함께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결코 현재에 온전히 발붙이고 살아갈 수 없는 톰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뱀파이어 판타지물인 줄 알았습니다만, 그와는 달리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조금은 다른 존재라는 말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거나 한 곳에 정착하는 일은 피해야 하지만, 로즈 이후로 누구도 사랑할 수 없었던 톰은 마치 운명처럼 카미유에게 빠져들어요. 그녀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봐 전전긍긍하면서도 그녀가 자신을 알아보고 기억해주기를 바라죠. 하지만 기나긴 인생, 특히 톰과 같은 사람들에게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버티며 살아갈 수 있겠어요. 비록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곁을 먼저 떠나버리는 커다란 고통은 겪겠지만, 사랑했던 추억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감내하며 긴 시간을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영화가 이 작품을 어떻게 표현해낼지 무척 궁금해요. 뒷심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톰이 만났던 셰익스피어, 스콧 피츠제럴드, 로즈와의 사랑이라는 소재 만으로, 무엇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