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데이 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카트 멘쉬크 그림, 양윤옥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무 살 생일에 무얼 했는지 기억하나요?-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분이 계실지 궁금해요. , 물론 제 나이대에 해당하는 분들입니다. 쿄쿄. 안타깝게도 전 기억이 나지 않네요. 스무 살 생일뿐만 아니라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가버린 양, 오히려 기억하고 있는 것이 더 적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히나 곰돌군이 태어난 이후로는 어제 뭐 했는지도 가물가물한데, 스무 살 생일이라니요. 나의 스무 살은 어디로 간 것이냐, 스무 살이 뭐 그리 중요하냐! 라고 오기로라도 외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려. 하지만 가끔은 이십대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들어요. 그렇다면 그 때와는 다르게 살아보겠다, 지금에서야 부르짖어봅니다.

 

오우, 책을 받아보고 깜짝 놀랐어요. 제가 읽어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중 가장 얇은 것 같습니다. 카트 멘시크라는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특별 콜라보로 무라카미 하루키와 독특한 책을 펴냈네요. 책날개 뒤편을 살펴보니 이미 [], [빵가게를 습격하다], [이상한 도서관]을 함께 작업한 전력이 있습니다. 큼지막한 그림과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인 책이에요.

 

스무 살 생일날 그녀는 평소와 똑같이 일하는 중이었습니다. 생일이라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날짜를 바꿔달라고 했었지만 그 친구가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결국 출근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그 날, 늘 사장에게 식사를 가져다주던 매니저가 복통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바람에, 그녀가 우연히 사장에게 식사를 배달하게 되었습니다. 604호실, 정확히 8시에 식사를 배달하러 간 그녀는 사장과 대화를 나누게 되고, 스무 살 생일선물로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는 이야기를 들어요. 그 소원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은 채 시간은 흘렀고, 그녀는 결혼해서 아이까지 둘인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는 누구나 에엥?’ 할만한, 그런 단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가 스무 살 생일에 빈 소원은 드러나지 않은 채,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마지막을 장식할 뿐입니다. 분량도 얼마 되지 않고 읽는 데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았지만, 다 읽은 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도무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거든요. 제가 도달한 결론은, 스무 살 생일에 무엇을 빌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저도 그 때는 틀림없이 어떤 소원을 빌었을 것이며, 그 소원을 바탕으로 지금의 제가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라도, 어떤 소원을 빌어도, 그 소원을 빌게 된 것은 그 때의 상황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고 모든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현재의 저라는 존재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작가가 남긴 의미심장한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감히 추측해봅니다.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는 소설보다는 에세이를 더 선호하는 편이지만, 가끔은 이런 작품도 좋은 것 같습니다. 짧지만 강렬하고 읽은 뒤 많은 여운을 남긴 소설이었어요. 표지에 등장한 여성의 얼굴도, 그 얼굴 위 적힌 숫자조차도 단순하게만은 다가오지 않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