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빌려달라고도 안하겠지만 빌려주기가 정말 싫은 책이 있다. 책이라는 것은 빌려주면 받을 확율이 무척 낮은 편이고 빌려줘놓고도 금방 잊어버리기 일수. 이 부분은 정말 돈과 차이가 난다. 돈은 10년 전에 누구한테 빌려줬는지 정말 어제처럼 새록새록 생생한데 책은 어제 빌려준 책도 잊어 버린다. 정말 인간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책을 그렇게 좋아해도 돈보다는 관심이 덜가다니 -_-;;;
세노 갓파의 <펜끝으로 훔쳐본 세상>은 알라딘 세일즈 포인트로도 알 수 있겠지만, 절대로 베스트도 스테디도 될 수 없는 책이다. 책 내용도 정말 분류하기 힘들만큼 잡다하다. 게다가, 번역하기도 무척 힘들고, 번역판을 내기도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페이지마다 '손으로 쓴 글씨'로 빼곡한 일러스트가 들어 가 있기 때문. 비슷한 류의 책을 예로 들자면, <고서점 그래피티>류의 일러스트다. <고서점...>의 경우에는 아예 그림 부분에 쓰여진 일본어는 원서 그대로 나왔다.
세노 갓파라는 사람의 친한 친구가 바로 몇년 전부터 한국에서 주목받고 있는 '다치바나 다카시' -책에 보면 다치바나 다카시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둘이 친한 이유가 너무 명확하다. 쓸데없을 정도로 관심분야가 넓고 잡다한 것. 정말 책을 읽다보면 별의 별 것에 관심이 다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방대한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여행한다.
블루치즈, 모차르트와 똥, 모밀, 터치 앤 필 그림책, 도예, 이오네스코의 코뿔소, 유럽의 맥주잔... 이 글을 읽노라면, 정말 자기 꼴리는 대로 인생을 산 사람의 즐거움이 역역히 느껴지 나 역시 음.. 그래 이렇게 살아도 된다 말이지. 라는 이상한 용기가 솟아오른다.
한국에서는 개인적 삶에 정말 잡다한 간섭을 받는다. 지극히 개인적 취향부터 정치적 성향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집단과 비슷할 것을 강요받고, 불쾌할 정도의 간섭을 받아야 한다. 신경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정신병이라도 걸릴 듯. 나는 신경이 소심줄마냥 굵고 질긴 편이지만, 잡다한 취향에 대한 간섭을 들을 때면 '고만 하시지'..류의 상소리가 나간다.
게다가 의무교육 기간 동안 염불처럼 '홍익인간'과 같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 -_-;;;만 듣고 자란 평범한 나에게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삶은 어쩐지 남에게는 이야기하거나 보여져서는 안될 어떤 것처럼 느껴져서, 그렇게 살면서도 떳떳하게 커밍아웃은 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기적'이란 말은 심각한 결점이다. 예컨대, 입사원서에 '제 성격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며 세상의 중심은 나고,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오는 것은 매달 들어올 월급으로 음악듣고, 책사고, 공연보기 위해서다'라고 했을 때, 과연 뽑아줄 회사가 얼마나 있을까? 물론 나도 원서에는 그렇게 안썼다. ^^;;; 게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별 시덥지도 않은 어택이 많이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세노 갓파의 이 책을 읽으면서 또다시 가열차게 나는 나대로의 삶을 살 것을 다짐한다. 나는 출세나 명성 따위를 바란 적이 없다. 읽고 싶은 책과 보고 싶은 공연, 듣고 싶은 음악을 보고 듣고 만날 수 있는 시간과 돈 정도가 인생에 바라는 전부다. 나는 정말 그처럼 살고 싶다.(물론 그는 왕성한 활동을 하는 무대예술가이나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정말 인생을 자기가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 그것은 인생이 이룩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닐까? 물론 위인전의 인물처럼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간 사람들의 인생도 훌륭하지만, 나는 적어도 위인보다는 그냥 평범하게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