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실 영어를 잘 못한다. 그래서, 주로 번역된 책을 읽지만, 이 책은 첫문장을 읽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가 원서를 사고 말았다. 물론, 번역본이 대형 서점에 비치되지 않아서 원서를 사게 된 이유도 있지만. 대학 때 왠만한 소설은 꼭 '원어'로 읽으라는 한 교수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책장을 뒤적였는데.. 이게 물건이다.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도 읽을 수 있도록 단어나 문장이 쉽다. 내 알량한 영어 실력으로도 사전을 보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어려웠던 단어는 '수의사'. 생전 첨보는 단어였다. 그리고 문장도 짧고, 한 장 역시 짧아서 호흡이 무척 짧게 끊어지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대체로 이 책을 소설에 분류를 해놨더라. 아마도 분량이 꽤 되어서 그런 듯 한데... 사실 이 책은 뉴베리 상을 받은 작품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 고학년에서 중학생 정도가 읽을 만한 수준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재미있다!! 스탠리라는 한 소년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린레이크 캠프라는 일종의 교정지도소에 가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기본 줄거리. 하루에 30피트 깊이와 지름의 구멍을 파는 것이 주요 일과. 아이들은 저마다 이상한 별명으로 서로를 부른다. 게다가, 이곳은 그린레이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물한방울 없는 황무지다.

여기서 두 가지 이야기가 현재의 이야기에 끼어든다. 첫번째는 스탠디의 고조 할아버지가 받은 저주 이야기고, 두번째는 여자강도 케이트 버로의 이야기. 스탠리의 증조 할아버지가 케이트에게 돈을 강탈당한 적이 있었으니, 이 두 이야기는 연결이 있기는 하다.

섬세하게 직조된 이야기. 처음에는 전혀 상관없는 세 시대의 인물과 사건이 스탠리와 제로(실제 이름은 헥터 제로니)와 절묘하게 이어진다.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스탠리와 제로의 관계는, 마지막 제로의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로 알게 된다. 스탠리의 고조 할아버지의 저주를 스탠리가 푼 것이다.

평론가들은 이 이야기를 '굳이' 성장문학으로 보기 위해 애쓰는 것이 나는 못마땅하다. 어린이문학의 즐거움을 인정하는 듯 하면서, 보다 상위의 가치(그들 논리에서)나 추상적 개념으로 이야기를 환원하지 않으면 못견디게 불안한 것. 하지만, 이 책은 성장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이 이야기의 즐거움은 몇겹으로 꼬아놓은 비밀들이 하나씩 벗겨지면서 느끼는 쾌감에 있다.

마치 수많은 퍼즐이 하나의 그림으로 딱 맞추어졌을 때의 즐거움에 비유할까. 이야기 시작에서 도대체 왜 물한방울 없는 황무지의 이름이 그린레이크일까, 스탠리의 고조 할아버지와 집시 여인, 케이트 버로와 그린레이크 캠프의 원장, 그리고 흑인 양파 농사꾼, 스탠리의 증조 할아버지와의 관계, 제로와 스탠리 사이의 인연까지... 그야말로 숨가쁘게 이야기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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