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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 -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
M. T. 앤더슨 지음, 장호연 옮김 / 돌베개 / 2018년 4월
평점 :
사실 이 책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 망설였었다. 난 이 책이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7번》 만을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 쇼스타코비치의
전기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고, 검색을 하다 그의 회고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먼저 읽었다. 그리고 회고록에서 작곡가가 그의 《교향곡 7번》에 관해 많은 말과
많은 글이 있지만 자신의 작품으로만 판단해 달라고 했다는 걸 읽고 그럼 이 책을 읽지 않는 게 작곡가의 뜻에 따라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난 《교향곡 7번》이 궁금했고 이 책을 읽고 싶었다.
예상했던 것처럼 《교향곡 7번》에만 국한된 글은 아니다. 앞부분은 그의 전기처럼 전개된다. 앞서 읽었던 회고록이 회고록이라는
한계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 – 작곡가의 인생을 개괄해 주지는 않는 – 을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가령 작곡가의 가족 관계와 집안 분위기라든가
첫사랑, 그리고 아내와의 만남과 신혼 초의 위기 등.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기존에 나왔던 쇼스타코비치의 많은 전기들을 취합한 것처럼도 보인다. 당대의 사회, 정치적 배경이 꽤 상세히 묘사되어 있고 작곡가 개인의 일화도 적절히 버무려져 있다. 저자 자신이 참고한 문헌도 꽤 방대하고 중간중간에 사진도 삽입되어 있어서 흥미롭다.
물론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교향곡 7번》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길고 깊다. 사실 앞부분의 모든 정보들은 《교향곡 7번》을 이야기 위한 빌드업이긴
하다. 작곡가가 《교향곡 7번》을 착수했을 때 그리고 완성하고
초연하기까지의 정치 사회적 분위기와 세계 정세 등이 사진과 함께 매우 상세히 설명되어 있어 쇼스타코비치나 그의 《교향곡 7번》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당시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교향곡 7번》에 관한 정보만 놓고 보면 그간 알려진 것만으로도 충분할
지 모른다. 물론 나야 이 곡을 좋아하니까 쇼스타코비치가 1, 2 악장은
레닌그라드에서 작곡하고 나머지는 피난처에서 마무리했다는 것, 1악장의 메인 테마를 주위에 들려주었을
때 다들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침공’을 떠올렸다는 것, 그리고 당시 레닌그라드와 소련 인민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이 곡이 완성되기 전부터 이용되었고 작곡가 자신도
그걸 알았지만 묵인했으며 초연이 되자마자 역시나 열광적인 반응이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전세계적으로도
이 곡을 연주하기를 원해서 악보를 서방 세계로 보내는 데 마치 비밀 작전과 같은 계획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원래는 전세기로 이동했어야 할 마이크로
필름 형태의 악보가 이란과 이집트, 브라질을 거쳐 겨우 미국에 도착했지만 홍보 대행사 직원의 실수로
쓰레기통에 들어갈 뻔 했다는 것 등의 이야기는 당연히 내 눈을 반짝이게 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저자도 얘기했고 나도 오래 전부터 생각해왔던, 음악의 해석에 관한 것이다.
교향곡 자체가 핵심이다
음악을 들어라.
그와 함께 쓰는 것은 당신의 교향곡이다.
- 186~187쪽
당대에 많은 사람들은 이 곡이 갖는 의미가 명확하다고 생각했고 작곡가 본인도 이 곡의 의도를 이야기했다. 물론 작곡가의 의도는 매우 중요하다. 작곡가가 레퀴엠이라고 얘기한
이 음악을 축제 음악으로 사용해선 안 될 것이다(예전 라흐마니노프 전기를 읽을 때 미국의 어느 도시에서
이 곡을 축하 음악으로 연주했다는 걸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삶의 상황과 경험에 따라 곡의 해석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1악장의 메인 테마는 침공을 의미하지만 그게 반드시 어떤 ‘ism’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한 이 곡은 레퀴엠이지만 청자가
애도해야 할 대상이 반드시 전쟁 혹은 이념의 희생자만은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이곳에서 이 음악을 듣는 사람이 이 곡을 통해서 얻는 위로,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PS. 이 아래로는 다 사족이다.
아무래도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사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계속 은근히 거슬렸던 부분은, 저자가 볼코프가 엮은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에 관해 언급하는 부분이다.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 – 볼코프가 받아 적었다고 주장하는 것 – 에 대해 나도 약간의 의문을 갖고 있기는 했다. 내 생각에는, 말년의 쇼스타코비치가 예뻐하는 젊은 음악학자(볼코프)에게 자신의 지난 날에 대해, 특히 자신이 알았던 사람들에 대해 들려주고
싶어했고 볼코프는 충실한 청자 역할을 했으나 그 자리에서 그걸 받아 적지는 못했을 거 같다(쇼스타코비치
자신이 싫어했을 거 같다. 그는 대범한 사람은 아니었으니). 아마
작곡가의 아파트를 나와서야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메모를 했을 거라 짐작했고, 이 책의 저자 또한 그렇게
추정한다.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그가 기억에 의존하여 책을 썼을
가능성이다. 쇼스타코비치의 화법과 글 쓰는 방식을 흉내 내면서 말이다.
그 말은 『증언』에 나오는 이야기의 세세한 면이 정확한지 여부를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쇼스타코비치가 말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교향곡 5번》의
피날레에 대한 내용도 그렇다. (중략)
설령 이 ‘회고록’이 나이 들고 죽어가는 작곡가가 한 말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기록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진정한’ 쇼스타코비치로
이해할 수 있을까? 예순 살의 작곡가는 서른 살 때와 같지 않다. 그는
자신에 대해 진실을 말했을까? 아니면 본인의 과거를 윤색했을까?
-185~186쪽
그런데 사실 난 저자의 질문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작곡가가 자신의
과거의 진실을 마음 깊이 알고 있으면서도 윤색했다한들 그게 뭐 어떤가? 누구나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고픈
욕심을 갖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기억이란 자기 자신이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고 믿는다. 게다가 작곡가 자신이 한 말이든 아니든, “내
음악으로 나를 판단하라고 하라(『증언:쇼스타코비치 회고록』 449쪽)”는 말이 틀린 건 아니지 않은가. 그의 삶 자체가 이를 계속 주장하고 있으니.
그래서
이 책의 저자도 비슷한 말을 하긴 한다.
그렇다면 《교향곡 5번》의
피날레는 어떨까? 그것은 낙관적일까, 비극적일까?
마지막 악장에 투쟁이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중략) 투쟁에서 누가 이겼을까?
쇼스타코비치는 진정한 희망을 제시함으로써 곡을 끝맺었을까?
이는 어쩌면 듣는 사람에게 달린 문제일 수도 있다. 그것이 음악의 기적이다.
- 186~187쪽
그리고 저자는 《교향곡 7번》의 메인 테마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독일군의 침공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쇼스타코비치가 아니라고 “그것은 스탈린이 파괴했고 히틀러는 그저 마무리했을 뿐인 레닌그라드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는 볼코프의 주장이 그가 앞서 쇼스타코비치가 전쟁이 일어나자 재빨리 이 곡을 쓰기
시작했다는 말과 모순된다고 했지만(366쪽), 그 책을 읽은
나로서는 저자에게 동의할 수 없다. 볼코프는 분명히 쇼스타코비치는 오래 구상하고 구상한 것을 빠르게
악보로 써 내려가는 타입이라고 얘기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쇼스타코비치 친구의 입을 빌려 이 주제에 관한
작곡가의 생각이 변했을 거라 얘기하는데, 그 점은 나도 동의한다.
어쩌면 쇼스타코비치의 친구였던 레프 레베딘스키의 설명이
가장 그럴듯할 수 있다. 그는 쇼스타코비치가 유명한 행진곡을 전쟁 전에는 “스탈린 주제”라고 불렀다가 그것을 교향곡에 통합하면서 의미가 바뀐
것 같다고 주장했다. 작곡가는 “반히틀러” 주제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더 일반화해서 “악의 주제”라고 불렀다고 한다. 절대적으로
옳은 이야기다. 그 주제는 음악계의 고집과 달리 반스탈린적인 만큼 반히틀러적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중략) 그러나 쇼스타코비치 본인은 곡의 의미를 한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영혼의 속박”을 추상적으로 묘사한 것, 우리 안에서 처참하게 자라 우리를 파괴의 춤으로 이끄는 온갖 추하고 옹졸한 것들을 들으려고 한다.
- 367쪽
그리고 이건 볼코프가 전한, 쇼스타코비치가 독일의 바르바로사 작전
전부터 이 곡을 구상했고, 독일이 침공하자 구상하던 곡의 규모가 커졌으며 그걸 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쇼스타코비치의 말과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나도 볼코프가 쇼스타코비치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고 단 1%의 윤색도
없이 책을 출간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저자처럼, 그리고
그 회고록에 의문을 제기한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볼코프가 허구를 마구 섞어 넣었으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말이란
어쩔 수 없이 발화되는 순간 변형되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볼코프를 편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다. 저자 자신도 여러 에피소드들을 마치 소설처럼 가공했지 않은가. 다행히
저자의 말을 통해 『증언』이 어느
정도의 신빙성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 와중에도 모두 인정하는 건 아니라고 명시한다.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증언』이 말하는 쇼스타코비치의 모습을, 그의 말을 믿는다는 것이다. 이 회고록을 통해 서구 세계에 쇼스타코비치의 진짜 모습이 알려지게 되어 다행이라고, 작곡가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으리라고 난 믿는다. 어쩌면 이 얘기는
이 책의 리뷰가 아닌 『증언』의 리뷰에서 했어야 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