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회고록
쇼스타코비치 (Dmitri Shostakovich) 지음, 솔로몬 볼코프 엮음, 김병화 옮 / 온다프레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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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스타코비치가 말년에 솔로몬 볼코프에게 자신의 지인들과 자산에게 영향을 미쳤던 인물들에 관한 회상을 하고, 불코프는 그의 아파트에서 그걸 받아 적는다. 그리고 볼코프는 이 원고를 소련에서 출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서방에서 출간하기로 쇼스타코비치와 이야기하고, 그가 사망한 후 1979년에 뉴욕에서 출간한다. 스트라빈스키와 스승이었던 글라주노프를 비롯하여 친우였던 메이예르홀트와 친구라고 하긴 뭐하지만 친분을 가지고 지내며 존경했던 장군 투하쳅스키, 자신을 비판했던 솔제니친과 자신이 너무나 좋아했지만 스탈린에 의해 숙청당한 조셴코와 아흐마토바, 그리고 너무나 얕은 철학 - 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었다면 - 으로 예술을 망쳤던 스탈린 등 인물 위주의 회상들이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많이 이야기한 건 자신의 작품들. 작곡을 할 때의 상황들과 그 곡들이 선보여지던 때의 상황들에 대한 회한이 깊다. 물론 그럴 수 밖에.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내가 주목했던 인물은 쇼스타코비치와 페트로그라드 음악원 동기인 피아니스트 마리아 유디나. 머리말에서 볼코프는 쇼스타코비치가 살아 남은 이유로 그 당시 많은 인텔리겐챠가 택했던 길 - 유로지비가 되는 것 - 을 쇼스타코비치 또한 택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진짜 유로지비는 마리아 유디나이다. 그처럼 삭막한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종교를 부인하거나 감추지 않고 소신대로 살았던 사람. 자신이 가진 걸 더 필요한 사람에게 내어주는 데 망설이지 않았던 사람.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긴 했지만 이 책은 일단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이야기이다.


이외에도 얼핏 비치는 여러 인물들에 대한 단상이 꽤나 흥미롭다. 사실 앞에서 마리아 유디나 이야기를 길게 하긴 했지만 쇼스타코비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긴 힘들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재평가한 인물은 글라주노프. 언제나 음악원에 가면 그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난 앞서 읽은 라흐마니노프의 전기에서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1번 초연 당시 지휘자였던 글라주노프가 술을 마시고 연주를 했다는 이야기에 그에 대해 선입견이 있었는데 역시나 술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글라주노프는 제자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늘 최선을 다했고 음악을 정말 사랑했으며 늘 음악에 헌신했다. 글라주노프의 말년이 힘들었다는 걸 알기에 그에 관한 쇼스타코비치의 애정이 더욱 안타까웠다.


그 밖에도 므라빈스키에 대한 비판 내 음악의 최고 해석자라고 자처하는 어떤 사람이 내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너무나 놀랐다.” (423) – 이라든가 프로코피에프에 관한 이야기 그는 제대로 오케스트레이션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121), “그는 비정한 사람이었고 자기 자신이나 자기 음악 이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136) – 는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었고, 왜 이 책이 조작 논란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원했던 건 그의 작품 특히 《교향곡 제7, 이른바 <레닌그라드>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주제에 관한 책이 이미 한 권 있지만 그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을 먼저 읽는 게 맞을 거라 생각해서 이 책을 먼저 읽었고, 읽기를 잘했다. 여기서 쇼스타코비치가 자신의 《교향곡 제7》에 관해 이야기한 건 내가 이전에 그의 음악을 들으며 짐작했던 게 맞다는 걸 확인해 주었다.


《교향곡 제7번》은 내 작품 중에서 가장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그 곡은 나를 슬프게 한다. 이 곡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음악에 전부 나타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아흐마토바는 시의 형태로 자신의 「레퀴엠」을 썼지만 나의 레퀴엠은 《교향곡 제7번》과 《교향곡 제8번》이다.” (334)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 제7번》을 히틀러 침략 훨씬 전부터 구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 곡을 <레닌그라드>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불만은 없으나 이건 스탈린에 의해 이미 파괴되었고 히틀러는 그냥 마무리만 했던 도시에 대한 애가이며 전쟁뿐 아니라 체제에 의해서도 고통 받은 사람들에게 바치는 레퀴엠이다.


나는 히틀러 때문에 죽은 사람들의 고통을 영원히 마음속에서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의 명령으로 살해된 사람들을 생각해도 그에 못지 않게 고통스럽다.”(371.)


내 교향곡은 대부분이 묘비다. 너무 많은 수의 우리 국민들이 죽었고 그들이 어디 묻혔는지는 알려지지도 않았다. (중략) 메이예르홀트나 투하쳅스키의 묘비를 어디에 세우겠는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음악밖에 없다. 나는 이런 희생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작품 하나씩을 바치고 싶지만 그건 불가능하니까 그들 모두에게 내 음악을 바친다.”(372.)


이처럼 쇼스타코비치는 지난한 삶을 견디면서도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의 인간성을 잃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것, 인간적인 삶을 이어가는 게 그 어떤 사상이나 체제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그의 말대로 고통 받으면서도 노력하고 사색했던 사람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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