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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이 책의 제목은 '구경꾼들'인데, 나는 몇 번을 '이야기꾼'이라고 불렀다.
이 책 자체가, 정말이지 엄청난, 대단한, 훌륭한, 뛰어난, 놀라운 '이야기꾼'이어서 나도 모르게 제목을 잘못 부른 모양이다.
올해 만난 책 중, 입담 좋기로 치자면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것 같고, 그 재미로 따진대도 역시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것 같고, 추천 의욕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역시 세 손가락 안!('다섯 손가락'이라고 하자니 어쩐지 느낌이 좀 약해보이고, '두 손가락'이라고 하자니 뭔가 어색하고, 그래서 '세 손가락' 안에 꼽은 것인데, 나머지 두 권이 뭔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말이다. 흠흠)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렇지, 아직 다 읽기도 전에 이미!!) 여기저기 정말 많은 '강추'를 날렸다.
트윗이니 미투는 물론이고 밥 하는 엄마 붙잡고, 아들 데리러 온 여동생 붙잡고, 휴가 나온 남동생 붙잡고, 이제 막 가입한 책 모임 회원들 붙잡고(?) 침 튀기며 추천을 날렸는데, 엄마, 남동생, 여동생 모두에게 "나 다 읽은 다음에 읽어봐"라고 해뒀으니 누구부터 빌려줘야 할지 모르겠다. 마음 같아서는 한 권씩 사다 안기고 동시다발적으로 읽게 하고 싶지만. (마음은 그렇고 행동은, 내가 읽고 싶은 다른 책들 부지런히 사 나르고. 흠흠)
중심에 있는 등장인물은 한 가족이다.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부터 시작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큰삼촌, 고모, 작은삼촌, 그리고 '나'에 이르기까지 한 가족의 역사가 구성진 입담으로 술술술. 책을 읽다 혼자 킬킬킬 웃음 터뜨린 것도 오랜만이고, 책 속의 한 일화를 다른 누군가에게 신나게 들려준 것도 오랜만이고(대부분은 대략적인 '40자 줄거리' 정도와 책 읽은 느낌을 말하지 그 책 속에 있는 일화를 세세하게 이야기로 구성해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일은,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별로 없는 일), 도무지 '너무' 좋아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저 "일단 읽어봐!!" 정도밖에 말할 수 없는 책도 오랜만이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정말 '말도 못하게' 재밌다!
책을 읽고 나서 세상이 조금쯤 달라보인다면, 세상을 보는 시선이 조금쯤 달라진다면, 그건 책이 나에게 할 의무를, 내가 책에게 해야 할 의무를 어느정도 제대로 이행한 게 아닐까? 이 책을 읽고나니, 확실히 그렇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진 듯 하다.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게 보이던 사물들, 사람들, 사건들이 내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검정 봉지는 어쩌다가 그곳까지 날려오게 되었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본 시커먼 화재 현장에서는 어떤 사연이 있었으며, 오늘 내 옆을 종종걸음으로 지나간 소녀는 그 시간에 어디로 향하는 길이었으며, …… 주변의 사소한 것들이 끝도 없이 궁금해지고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들에 귀기울이고 싶어지는 이 책. 나를 안테나 바짝 선 '구경꾼'으로 만들어 준 이 책. 앞으로 내가 세상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고, 조금 더 따스한 마음으로 세상을 품게 된다면, 그건 이 깜찍하도록 사랑스러운 이야기꾼, 아니 '구경꾼들'의 덕이 클 테다.
이 세상에 이런 책이 있음에, 이런 책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는 건, 독자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자 축복.
겨울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는 굵은 눈송이처럼 내 마음에 펑펑펑 쏟아져내린 행복과 축복을 널리널리 떨치고 싶은, '기쁘다 구경꾼들 오셨네~' 노래하고픈 겨울 밤.
이처럼 사랑스러운 이야기 책을 만났는데, 나의 겨울이 어찌 스산하고 시릴쏘냐. 따스하고 따스하고 또 따스하다.
나뿐만 아니라 이 소설 속의 '나'도 여전히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부러진 갈비뼈는 영원히 붙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을 어느 정도까지 경험할 수 있는 것일까? 겨우 한 귀퉁이 정도만 볼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나머지는 누가 보는 것일까? 그 나머지의 공간, 그 나머지의 경험, 그 나머지의 이야기들은 어디를 떠돌게 되는 것일까? 나는 늘 그것이 궁금했다.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