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에 아픈 사람 민음의 시 120
신현림 지음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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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손길은

가랑비같이 다가오리

흐드러지게 장미가 필 땐

시드는 걸 생각지 않고

 

술 마실 때

취해 쓰러지는 걸 염려치 않고

사랑이 올 때

떠나는 걸 두려워하지 않으리

 

봄바람이 온몸 부풀려갈 때

세월 가는 걸 아파하지 않으리

오늘같이 젊은 날, 더 이상 없으리

 

아무런 기대 없이 맞이하고

아무런 기약 없이 헤어져도

봉숭아 꽃물처럼 기뻐

서로가 서로를 물들여 가리 _ '사랑이 올 때' 전문

 

 

신현림 시인의 산문집 『만나라, 사랑할 시간이 없다』를 읽고 시인의 시집이 무척 읽고 싶어졌더랬다.

책 안에 중간중간 인용된 시인의 주옥 같은 시편들.

그렇게 해서 구입한 시집들 중 가장 먼저 집어든 시집이 『해질녘에 아픈 사람』이다.

무슨 까닭인지, 해만 지면, 기분이 착 가라 앉는 사람이다, 나는. 그래서 시집 제목에 무척 끌렸다. '해질녘에 아픈 사람, 나잖아...?'

 

한 잔의 사랑, 한 잔의 여자, 한 잔의 삶, 한 잔의 거리...

저무는 해에 마음속 밝음 함께 묶어 보내고 어둠이 스멀스멀 스며든 내 마음을 한 컵 한 컵 떠내어 내 마음 데워줄 아름다운 시 구절들을 토핑으로 얹어 마셨다.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처럼, 한 모금만 마셔도 우울이 씻겨지는 핫초코처럼, 내 마음을 예쁘게 만져준 시들이 있어, 그 밤에는 아프지 않았다.

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라앉으려던 상처가 덧나 조금 더 아프기도 했음, 역시 사실이지. 하지만, 그렇게 자꾸 꺼내어 확인하고 다짐하고 도닥이고 그러는 동안 내 마음은 다시 단단하게 아물 테니까. 나 혼자였다면 속으로 속으로 꽁꽁 묶어두려고만 했을 기억들을 토닥토닥 정리하도록 도와주었다.

늘 생각하지만, 시집은, 정말 고마운 마음의 연고.

 

사진을 전공한 시인의 사진도 함께 만나볼 수 있어 더욱 색달랐던 느낌의 시집.

기꺼이 펼쳐든 시집 속에서 내 마음에 쏙 드는 많은 시들을 만나는 행운을 안았다.

좋다, 좋다, 참 좋다.

 

 

음악을 진하게 틀어요

라일락 향기 퍼지듯이

명상 음악을 징 하게 틀고

천천히 춤을 추듯 나는 요가를 하죠

자꾸 눕고 싶죠 일어나기 싫죠

푹 꺼지는 빈 자루의 자신을 보고 싶나요

나는 나를 바꾸고 싶어

파도처럼 몸부림치죠

당신은 당신을 바꾸고 싶지 않나요?

기꺼이 하는 일엔 행운이 따르죠

잘될 거야, 잘되고 말 거야! 외쳐보고

기꺼이 하는 일엔

온 하늘이 열리고

온 바다가 출렁이고

오렌지 태양이 떠올라요! _ '기꺼이 하는 일엔 행운이 따르죠'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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