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심장을 나에게

 

              이이체

 

 

  당신과 재회했다. 이별은 헤어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 살게 되는 병에 걸리게 한다. 내 기억은 당신에게 헤프다.

 

  어쩌면 이리도 다정한 독신을 견딜 수 있었을까.

  세상에는 틀린 말이 한마디도 없다.

 

  당신의 기억이 퇴적된 검은 지층이 내 안에 암처럼 도사리고 있다. 어떤 망각에 이르러서는 침묵이 극진하다. 당신은 늘 녹슨 동전을 빨고 우는 것 같았다. 손이 잘린 수화(手話)를 안다. 우리는 악수를 손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추상의 무덤에서 파낸 당신의 심장을

  냇가에 가져가 씻는다.

 

  누가 버린 목어(木魚)를 주웠다. 살덩어리가 단단해서 더 비렸다. 속마음을 다 드러내면 저토록 비리게 굳어버린다던, 당신의 이야기. 이따금씩 부화하는 짐승의 말.

 

  지금 쉬운 것은 훗날에는 아쉬운 것이다.

  버린다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강기슭에서는 사람이 태어날 때 끊었던 탯줄을 간직해두었다가 죽을 때 함께 묻는 풍습이 있다. 서로 떨어지지 못한 채 남이 되어버린 슬픔. 지금은 내가 먹을 수 없는 타액을 떠올리며 나는 마르게 웃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받고 싶었던 거라고 자백했다. 살을 짚어 만나는 핏줄처럼 희미하게 그리워하는.

 

  심장은 몸이 아니라 몸의 울림이다.

  내가 아프면 당신도 아파하고 있을 거라고 믿겠다.

  그 아픔에 순교하는 심장이 사랑이다.





요 며칠, 처음 만난 이이체 시인의 시들에 마음 앓고 있다.

sns를 검색해 이이체 시인의 글들을 조금 더 찾아보았는데, 아아, 그렇구나, 다 좋구나...

하여, 냉큼 알라딘으로 달려와 시인의 다른 책들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지금까지 총 두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산문집.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두 권만 더 사면 되니 다행이고,

이 아름다운 글들을 아직까지는 세 권의 책으로만 만나봐야 하는구나 생각하면, 아쉽고.


올봄, '참 잘했어요' 도장 찍어주고 싶은 일로, 이이체 시인의 시집을 구입한 일,을 기록해야겠다.

셀프 쓰담쓰담 해주고 있다.

이런 시집 놓치지 않고 구입한 나 자신에게.





  존재의 놀이

 

           이이체

 

 

  나는 나에게 버림받는 것보다

  당신에게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렵습니다

 

  지독한 치정 속에서 홀로 깨어나,

  당신 떠난 빈방에 눈먼지처럼 쌓인 겨울을

  쓰다듬으며 밤을 더 깊게 파고 있습니다

 

  마음이 몸을 두르고 꽃피운 기다림

  그 지난한 머무름의 곁에는

  서로 닮지 못할 삶이어도 거듭 서로를 길들이는

  투명한 포옹이 있습니다

 

  나와 당신이 각자의 사연으로 써 내려갔던

  엽서들이 어느 세계의 끝에 닿으면

  그때 비로소 나와 당신은 우리가 될 수 있을지요

 

  눈부신, 눈부신 어둠 속에서

  죽은 울음들을 가지런히 꺼내놓는 새벽

 

  나의 두 손으로 당신의 손을 지그시

  포개어 안고 싶습니다

 

  당신이라는 정신이 있기에

  육체라는 인형은 내게 아무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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