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견디는 기쁨 - 힘든 시절에 벗에게 보내는 편지
헤르만 헤세 지음, 유혜자 옮김 / 문예춘추사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고통을 달래는 순서』라는 시집을 무척 좋아한다.

그때의 내 마음에 꼭 필요한 처방전이었다.

제목만 보고 당장 시집을 집어들 정도로, 내게는 그 '순서'가 꼭 필요한 때였다.

그래서 그 시집을 읽고, '고통을 달래는 순서'를 찾았느냐고? 그 '순서'대로 고통을 달랬느냐고?

고통을 달래는 '순서' 같은 건 찾지 못했지만, 고통을 달래는 '방법'은 찾을 수 있었다.

 

내 마음과 꼭 닮은 글을 만나는 것.

그 글에서 공감하고, 그 공감 덕분에 위안 받는 것. 그게, 고통을 달래는 한 방법이었음을,

그 시집을 읽고 절실히 깨달았다. (그 시집 이후 김경미 시인의 모든 시집을 다 찾아 읽을 정도로 '애독자'가 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제목 때문에 한 책을 만나보게 되었다.

제목에 적은 것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삶은 왜, '사는' 게 아니고 '견디는' 것일까... 나는 왜 삶을 '살기'보다 '견디는' 느낌인 걸까...

이 책에서 나는 '삶을 견디는 기쁨'을 찾아볼 수 있을까...

그렇게 집어든 책이 바로 이 책,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디는 기쁨』이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내가 처음 『고통을 달래는 순서』를 만났던 때가 종종 떠올랐다. 이번에는 '공감'보다는 '깨달음'에 가까운 것들이 많았지만, 그때의 느낌과 비슷하게 마음에 스며드는 무언가가 있었달까...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딱 한 번이라도 시도해 보라! 한 그루의 나무와 한 뼘의 하늘은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다. 굳이 파란 하늘일 필요도 없다. 햇살은 어느 하늘 아래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침마다 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을 가지면 어느 날 문득 우리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공기를 느끼고, 잠에서 깨어나 일터로 향하는 도중에도 신선한 아침의 숨결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매일매일이 새롭게 느껴지고, 심지어 집집마다 지붕 모양이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_17

 

한 뼘의 하늘, 초록의 나뭇가지로 뒤덮인 정원의 울타리, 튼튼한 말, 멋진 개, 삼삼오오 떼를 지어 가는 아이들, 아름답게 감아 올린 여인의 머리. 우리는 아름다운 그 모든 것들을 눈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자연에 눈을 뜬 사람은 거리를 걷는 도중에도 단 1분도 허비하지 않은 채 소중한 것들을 느낄 수 있다. 많은 것을 보지만 눈은 절대로 피곤해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강해지고 맑아진다. 설령 내 흥미를 끌지 않거나 보기 흉하게 생긴 것들이라도 모든 사물들은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다.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보려는 마음이 그것을 볼 수 있게 만든다. _ 19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는 문장들.

'별 것 아닌' 듯 스쳐갈 수도 있는 문장이었지만, 요즘 '삶'을 그저 시시하게 여기고 홀대하고 특별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던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이 삶 속에 감추어진 아름다움을 보려는 마음, 그것 없이 어떻게 삶을 견딜 수 있을까...

길을 걸으며 풀밭을 유심히 살피기를 좋아하는 내가, 그 풀밭 위에 펼쳐진 아름다움을 보려는 마음은 강한 내가, 어째서 삶을 대할 때는 그 풀밭을 관찰하는 그 마음의 10분의 1도 발동되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는 헤르만 헤세의 그림들.

얼마 전 작가 100인의 일대기와 그들의 미술 작품이 실린  『작가의 붓』이란 책을 본 적이 있는데 헤세의 그림도 그 책에 실려 있었다.

(대문호 중에는 문학 뿐 아니라 예술 실력까지 갖춘 이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내 비루한 언어로는 그저 '다재다능'이라 말할 수밖에;;;)

헤세의 그림들과 함께 가슴에 와닿는 문장들에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은 시간.

그 시간 또한 '삶을 견디는 기쁨'이 되어주겠지.

 

 

잠은 자연이 주는 귀중한 선물이자 친구이며, 피난처이고 마법사이자 나를 따스하게 위로해 주는 손길이다. _ 45

 

내 삶은 때로는 힘겹고 불쌍하게 채워졌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나 가끔 내가 느끼기에도 멋있고 어려움이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인간의 삶은 어둡고 슬픈 밤과 같아서 가끔 번개라도 쳐서 잠시나마 주변의 어두움을 당당하게 물리친 것처럼 보이게 해 주지 않으면 잘 견뎌 내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_ 64

 

"고통은 고통 그 자체로 머물면서 절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아픔과 괴로움을 주지만 극복할 힘도 준다. 그렇게 얻은 힘은 고통을 보살피고, 아픔을 연습하며, 새로운 힘을 얻는다. 그 과정이 어렵고 괴롭다 하여 영원히 고통에 빠져 있고자 한다면 정말 어리석은 바보다." _ 109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는 일과 돈이 유일한 우상인 것과 반대로 찰나적인 유희를 즐기는 성향이나 우연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 변덕스러운 운명에 대한 신뢰가 더 필요하다. 우리 모두에게는 바로 그와 같은 것들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_ 258

 

이런저런 책을 읽는 동안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영원한 수수께끼와도 같은 문제들로 이루어진 세계를 헤쳐나가는 것이다. 그와 같은 문제들은 결코 해결할 수 없으며 단지 체험할 뿐이다. 그리고 끝에 가서 결국 삶은 우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다시 시도해 볼 수 있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것을 새로운 욕구와 열의로 추진할 수 있는 곳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되돌려 놓는다. _ 264

 

 

 

화요일에 할 일을

목요일로 미루는 일을

한 번도 하지 못한 사람이 나는 불쌍하다.

그는 그렇게 하면 수요일이 몹시 유쾌하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한다. _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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