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 새우를 잡는다는 것은 과연 어떤 기분일까?"

  가만히 숨죽이고 있다가 그가 다시 한숨을 몰아쉬고 나서 말했다.

  "밤하늘에 그물을 풀어 별들을 무더기로 끌어당기는 느낌이지. 운이 좋으면 가끔 달도 걸려들고."

  흠, 그래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로구나.

  "바다는 언제나 고독한 계절이지. 별이 쏟아지는 밤에 배 위에 누워 있으면, 바다와 하늘의 구분 따위는 곧 사라지지. 그러니까 나는 배를 타고 하늘 어딘가에 떠 있거나, 바다 어딘가에 떠 있거나…… 흐흐."

 

 

_ 윤대녕 「반달」

 

 

 

 

 

 

 

 

 

 

 

 

 

 

 

 

 

 

도자기 박물관에 갔다가, 반달을 만났어요.

오랜만에,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맑디맑은 동요를 흥얼거리며...

 

 

추석 언저리에는,

늘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생각하고 기다리고 바라보는데,

이번 추석에는 반달이 몹시도 그리웠답니다.

(실은, 그래서, 추석날 저녁에 만난 '슈퍼문'급의 보름달 보면서도 쬐끔 덜 반가워했어요. 보름달, 미안~! ^^;;)

 

 

 

  "반달이로구나. 부엌칼로 무를 썰어놓은 듯 깨끗하고 하얗게 떠 있구나."

  조수 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조금(小潮)의 바다. 그래서 바다가 움직임을 멈춘 채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로구나.

  "하얀 쪽배란 말이 정말 딱 어울리는구나."

  나는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의 무리가 성운을 이뤄 강처럼 하얗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문득 숨이 멎었다. 무심결에 어머니가 읊조리고 있는 동요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나는 길 잃은 아이처럼 어머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자니 유년의 서글픈 꿈들이 하나씩 되살아나면서 금세 덧없이 사라져갔다.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_ 윤대녕 「반달」

 

 

 

부엌칼로 무를 썰어놓은 듯, 하얀 쪽배를 꼭 닮은, 반달.

그 반달에 온통 마음을 사로잡혔답니다.

 

소설에서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 새우를 잡는" 느낌을, "밤하늘에 그물을 풀어 별들을 무더기로 끌어당기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는데요, 밤하늘에 그물을 풀어 별들을 무더기로 끌어당겨본 적은 없지만(^^; 누군들 있으랴만은...), 왠지 그 느낌을 알 것 같았어요.

「반달」을 읽은 제 마음도, 꼭 그런 느낌인 것 같았거든요.

 

무언가 총총하고도 은은한 기운으로 제 가슴을 충만하게 한, 반달.

그 여운이 참으로 짙습니다...!

 

 

언젠가 꼬옥, 서늘한 밤바다 앞에 서서,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가는 그 하얀 쪽배를 바라보고 싶어요.

 

 

 

 

 

 

삶의 길을 잃고 헤매던 젊은 날이 있었다.

그 시절을 돌아보면 덧없는 꿈이니 고독한 환상이니 화염 같은 고통이니 하는 말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길을 잃었었기 때문에

어쩌면 사랑이 가능했고 가까스로 삶의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_ 윤대녕 「반달」

 

 

 

 

 

 

 

 

 

 

 

 

 

 

 

 

 

 

 

 

 

반달은_아니지만_은하수도_아니지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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