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 2 - 아픈 여행 어떤 날 2
김민채 외 지음 / 북노마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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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도 참 여러 종류가 있죠.

... '여행'에는 '종류'라는 단어가, 좀, 분위기 없어 보이네요...?

그렇다면 단어를 살짝 바꿔서,

여행에도 참 여러 색깔이 있죠.

 

저는 주로 밝은 빛깔을 떠올리게 하는 가족 여행을 많이 다녔어요.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 늘 주황주황, 노랑노랑, 초록초록, 분홍분홍, 한없이 밝고 따듯하고 재미있지요.

그래서인지 제게 '여행'은 우리 가족 수만큼 여러 명이 함께 어울려, 좋은 것을 함께 보고, 맛난 것을 함께 먹고, 즐거운 것을 함께 행하는, 그런 거랍니다.

밝고요, 수다스럽고요, 유쾌하고요, 행복하지요.

 

 

그런데,

아픈 여행,이라니요.

저는 한 번도 떠나보지 못했고, 한 번도 떠올려보지도 못한 여행이었어요.

 

바로, 『어떤 날 2』를 통해 만난, '아픈 여행' 말이에요.

 

사람들은 마음이 아플 때 건강하고 강하게 이겨내는 방법으로 슬픔이 자신을 비켜가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착각하곤 하는데, 이는 건강한 방법이 아니다. 멍울진 감정이나 체한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슬픔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슬플 기회를!

 

_ 박연준 「슬픔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박연준 시인은 이 책에, '슬픔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썼어요.

그랬습니다. 슬픔에게도 기회가 필요했어요. 슬플 기회가! 맘껏 슬퍼하고 아파하여, 내 안에 쌓인 그 체기를 씻어내릴 기회가!

하지만 그런 기회, 제게는 여행에서는커녕, 일상에서도 거의 없었죠.

슬플 기회 같은 거 주지 않고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최면을 걸며 달음질쳐 왔지요.(이게 '건강하고 강하게 이겨내는 방법'인 줄 알고요...)

그러다 지난 이틀, 저는 이 책으로, '아픈 여행'을 떠났다 왔습니다.

'아픈 여행'이란 뭐냐고요...?

글쎄요, 각자가 느끼는 '아픈 여행'이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제게 '아픈 여행'은,

'슬플 기회를 주는 여행'이었어요. 슬픔에게, 슬플 기회를!

이 책을 읽으면서, 딱딱하게 굳어 있던 마음을 풀어 놓았고, 마음껏, 슬퍼했습니다.

책 내용과 상관 없이, 그냥, 눈물이 터져나오면, 울었어요.

 

나는 그 순간, '아픈 여행' 중이었으니까요.

 

 

 

 

 

거의 방치된 듯한 뜰에 제각각 앉은 사람들.

음악이 닿지 않아 조용하였고

대신 나지막한 무언가가 공기에 가득 느껴졌다.

느리고 수평적인 따뜻함 같은 것.

만약 내가 어둡다면 이런 날 만큼은 핑계가 없겠구나.

 

_ 최수진 「어디쯤 가고 있을까, 나는?」

 

 

 

이 책에는 모두 열네 편의 '아픈 여행'이 담겨 있습니다.

'아픈 여행'이라고 모두 같은 색채를 띠고 있지는 않아요.

누군가는 '모든 게 지긋지긋'해서 아팠고, 누군가는 사랑하는 친구를 잃어 아팠고, 누군가는 그냥 그 낯선 도시가 두려워서 '아팠고', 누군가는 '진심이 담기지 않은 가벼운 관계들 속에서' 지친 마음이 아팠고, 누군가는 '그냥' 아팠을지도요...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우리들 다 한 번쯤은 겪고 넘어가는 것이 아픔이다. 정해지지 않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들은 서로 "산다는 건 왜 이리 힘이 들까요"라고 이야기했다.

 

_ 서상희 「아무 준비 없는 여행」

 

서상희 변호사의 말처럼, 우리들 다 한 번쯤(어디, 한 번 뿐이겠어요!) 겪는 것이 아픔인 만큼,

이 '아픈 여행' 속 주인공은 지금의 나이기도 하고, 과거의 나였기도 했을 것이고, 미래의 나이기도 할 것이지요.

모두가 다 나의 '아픈 여행' 같아서, 읽는 내내, 나는 슬플 기회를 마음껏 누렸습니다.

 

이 책 한 권을 다 읽고 났을 때는,

마치 한바탕 신 나게 울고 난 뒤처럼, 마음이 어느 정도 차분해져 있었어요.

네, 이 책을 펼치기 전의 나는, 무언가 들끓는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운, 조금쯤 '위험 상황'에 처한 상태였어요...

이 책이 마침 내 손길을 잡아끌어 무심코 빼어들어 읽었고, 

이 안에 실린 '아픈 여행'들이 119 소방대원처럼 훌륭한 진화 작업을 해준 셈이지요.

 

관성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들, 떠나고 싶지만 발이 묶인 것들, 동적이면서 동시에 부동인 것들, 하염없으면서 속절없는 것들은 슬픔에 속한다.

 

_ 박연준 「슬픔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무엇 때문에 슬프든, 아프든, 힘들든,

마음의 끈을 조금 풀어 놓고 '아픈 여행' 한번 떠났다 오기.

그렇게 슬픔에게 기회를 주고 나면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말이에요...

 

그래도 나는 무탈했다. 행복했던 적도 많았다.

 

_ 김소연 「여행이 가고 싶어질 때마다 바라나시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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