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사라지지 마 - 노모, 그 2년의 기록
한설희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엄마는 얼굴이 달걀형이기보다는 네모난 편이고, 두 눈은 쌍꺼풀이 짙고 입술이 도톰합니다. 눈썹은 숱이 아주 적어서 '문신'으로 지워지지 않는 눈썹을 얻었지요. 콧마루는 꽤 낮은편이에요. 그리고 얼굴에는 점이, 있던가요 없던가요… 콧잔등 근처였나 입언저리였나, 어딘가에 작은 점 하나가 언뜻 떠오를 듯하다가 맙니다. 아니, 점은 제 왼쪽 뺨에나 있을 뿐 엄마의 얼굴에는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엄마 얼굴을,

    오래 들여다 본 적이 없습니다.

 

쑥스럽기도 하고, 늘 내 곁에, 거기에 그렇게 있는 얼굴이니까요. 한 소설에서 읽었던 구절이 떠오릅니다. "곧 익숙해질 거야. 나중엔 눈에 보이지도 않을걸." "어떻게? 항상 거기 있을 텐데. 내 눈에 보이는 곳에." "바로 그거야. 그러니까 오히려 안 보이게 될 거야."(『소수의 고독』) 이 소설 속 대화는 배에 새겨진 문신을 가리키지만, 항상 거기, 내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서 오히려 보이지 않게 되는 존재, 어쩌면 엄마도 그런 존재인지도요. 그래서 저는 엄마를 생각하다가 이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늘 그 자리를 지켜주기에, 잊고 살았는지도 모르겠어요. 애써 그 존재 떠올려보지도 않고, 물끄러미 들여다 본 적도 없고,

    그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깨닫습니다. 나는 엄마를, 잘 모른다고. 엄마의 머릿속, 엄마의 마음속은커녕 엄마의 얼굴에 점이 있던지 없던지조차 나는 잘 모른다고. 엄마는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 늘 내 곁에 있지만, 그래서 더욱 나는 엄마를,

    들여다보려 한 적 없습니다.

 

한 엄마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나의 엄마는 아니지만, 다시 몇십 년의 시간이 지난다면 나의 엄마의 얼굴이 될 것도 같은 한 엄마의 얼굴을. 예순아홉의 딸이 찍은 아흔셋 엄마의 얼굴입니다. 엄마는 오래된 이부가지 위에 앉거나 누워 있고, 아름다운 은발을 풀었거나 빗어 넘겼고, 지팡이를 짚었거나 휠체어에 앉았고, 등에는 뼈의 산맥이 두드러지고 손등에는 핏줄이 굵게 불거져 나왔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실은, 사진집을 넘겨보기도 전에 저는 울기부터 했습니다. 이 세상에 '엄마'만큼 수분이 많은 단어가 또 있을까요. 괜히 자꾸만 눈물이 나와, 며칠을 미뤄두었다가 드디어 펼친 이 사진집은, 하지만 눈물보다 귀한 목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지금 바로 엄마의 얼굴을 들여다보라고, 늦어버리기 전에 지금 바로, 엄마를 기억하라고. 간절한 바람을 담아 제목처럼 말해보고 싶지만, "늦든 빠르든 우리는 언젠가 고아가" 될테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최선을 다해 서로를 들여다보고 서로를 기억하는 것,이 아닐까요.

 

참 고맙습니다. 늘 곁에 있으면서도 잊고 살았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한 존재를 제 가슴에 가득 불러내어 주었습니다.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덕분에, 엄마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습니다. 아직은 쑥쓰러워 여행, 그리고 사진을 핑계 삼아,

    엄마 얼굴을 많이 들여다봐야겠습니다.

 

 

 

 

뷰파인더 속에 담긴 엄마를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엄마가 예쁘다고 느낀다.

아름다움이 어떻게 젊음의 전유물이겠는가.

늙은 엄마도, 그 엄마의 낡은 물건들도 이토록 빛이 날 수 있는데.

나이 든 이의 쇠락해가는 육신.

그 안에 층층이 쌓인 인고의 세월이 늙음을 더 빛나게 한다.

나는 엄마에게 들릴 듯 말 듯 말한다.

엄마, 엄마는 아직 고와. _ p.113

 

 

사진 속 엄마는 이렇게 묻는 듯하다.

내 삶은 빛이 들지 않는 자리에 있는 것 같았지만

돌아보니 제법 찬란했다고.

언젠가 다른 곳에서 다시 태어나도 내 엄마로 살고 싶다고.

네 사진 속 어딘가에서 환하게 자리하고 싶다고,

그러니 나의 늙음을 더는 딱한 눈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_ p.19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