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소설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3
미하일 조셴코 지음, 백용식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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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은 책 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 소설.

가을 무렵 읽었는데, 해가 바뀌고도 계속 이 소설이 머릿속을 맴돌아 다시 꺼내어 읽었다.

다시 읽어도 좋다. 아니, 다시 읽으니 더 좋다!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소설집은 별로 잘나지 못한 작은 사람에 대한, 서민들에 대한 것이다.'

'이 소설들은 변변찮고 약한 사람들과 서민들에 대한 것이며, 사라져가는 가련한 삶에 대한 것이다.'

 

별로 잘나지 못한 작은 사람, 변변찮고 약한 사람, 사라져가는 가련한 삶.

그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

내가 여기에 어찌 공감을 얹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내가 굵은 밑줄을 긋고, 읽고 또 읽어보며, 여기저기 옮겨적기도 한 문장은 이런 것이다.

 

그가 어떤 재앙을 겪었는지 어느 누구도 절대 알 수 없었다. 재앙이 있긴 있었을까? 사실대로 말하면 재앙은 없었고, 단순한 보통의 삶이 있었다. 천 명 중 두 명만이 사람답게 살고, 나머지는 살아남기 위해 사는 그런 삶이. _ 「아폴론과 타마라」, p31

 

'재앙'까지는 아니어도 재앙 수준의, 또는 내면으로 느껴지는 강도가 재앙에 이르는, (엄살임을 나 자신도 알지만) 비포장도로의 삶을 맨발로 달리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서 이 책을 만났던 것이다. 내가 지금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아무도 몰라줄 테지. 그런데, 내 삶의 '재앙'을 단순한 보통의 삶으로 직시하도록 해준 문장. 사실대로 말하면 야속하다. 하, 이것이 단순한 보통의 삶이라니!! 남들은 '단순한 보통의 삶'을 그렇게 빛나고 화려하게 사는데, 내게는 이런 게 단순한 보통의 삶이라니!! 야속했다. 그래도 내가 이 문장에서 위안을 얻은 것은, 내 편에 구백아흔여덟 명이 있다는 것. 역시 나는 어쩔 수 없이 비교로 인해 낙담하고 비교로 인해 기쁨 느끼는 저속한 인간. 어쨌든, 내 쪽에 구백아흔여덟 명이나 있다니, 나 혼자 힘든 거 아니라니, 그런 사실을 소설 속 문장으로 다시 한번 확인받고 나니, 조금쯤 무뎌지는 감정의 날카로움. 그렇지 않고서는 그 날카로움에 내가 온통 베여버릴 기세였기에, 내 감정을 누그러뜨려준 이 문장은, 2011년 내가 읽은 최고의 문장이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그 구백아흔여덟 명 중에서 선발되었다. 전쟁에 참가했다가 빈털털이가 되어 돌아와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보내야 했고, 마음에 드는 아가씨에게 영화 데이트를 청해놓고는 데이트 비용이 없어 구차하게 뛰어다니다 데이트 시간이 지나버리고, 암염소를 소유한 여주인 집에 세들어 여주인과의 결혼을 노리다 너덜너덜한 꼴로 내쫓기고, 결혼 준비를 하던 중 장모의 장롱 하나를 두고 감정 싸움이 일어 결혼이 파투가 나고... 정말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웃으며 읽게 된다. 남의 '불행'을 웃으며 읽는다고? 남의 불행이라고 웃은 거 아니다. 남 얘기 같지 않다. 많은 부분들이 내 얘기 같았다. 그런데도 엄청 웃으며 유쾌하게 읽을 수밖에 없는 작가의 문장들. 그래, 사는 거 뭐 있어, 이렇게 유쾌하게 농담처럼 살면 되는 거야, 하는 긍정적인 기운에 내 세포들이 물들었다.

 

나를 닮은, 나와 가까운 이들을 그린 듯한 이야기에 마음이 온통 빨려들어 간 덕분도 있지만, 이 책을 사랑하게 된 또다른 매력은 작가의 입담!

이 작가, 입담이 장난이 아니다. 엄청 수다스럽다. 그런데 전혀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나의 인디언식 이름이 '시끄러운 매'라던데, 나 자체가 시끄러운 인간이라 시끄러움을 못 느낀 건가...?) 불쑥불쑥 작가로서의 고뇌를 털어놓으며 독자들의 주머니 사정까지 고려하여 소시민의 이야기에 관심 없는 분들은 이 책을 구입하지 마시라고 조언을 해주는가 하면 행복하고 천국 같은 이야기를 꿈꾸는 독자들은 저 멀리 프랑스 소설가에게 고이 보내드리겠다고 하기도 하고 자신은 다른 작가들처럼 비유 솜씨가 좋지 못하다며 어설픈 척 비유를 늘어놓는 품이 꽤 능청 맞기도 하다. 마하일 조셴코의 다른 책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감상소설로 만나본 미하일 조셴코는 단번에 내가 기억할 외국 작가 2위로 뛰어 올랐다. (1위는 불변의 줌파 라히리.) 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고 싶어졌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했는지, 인생에서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것이 과연 실수였을까? 아무런 실수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인생이, 단순하고 혹독하고 평범한 인생이, 단지 몇몇 사람에게만 웃음과 기쁨을 허락하는 인생이 있을 뿐이었다. _ 「아폴론과 타마라」, p.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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