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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쁨 - 문정희 시선집 ㅣ 시월 활판인쇄 시선집
문정희 지음 / 시월(十月)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여기 사랑을 주제로 한 시 100편을 모았다.
몇 해 전에 나온 같은 주제의 시선집에다 최근 발표한 몇 작품을 첨가했다.
그동안 나의 시를 사랑해 주신 분들께 좋은 선물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수명이 몇 백년도 더 된다는 견고하고 우아한 한지에 청홍의 장정을 한 이 수공예 시집을 만드는 동안 참 행복했다.
_ 책머리에
참으로 특별한 시집을 선물받았다.
시월출판사에서 납활자인쇄 출판문화를 부활하고자 현재 활동중인 문인의 자선 작품을 단행본으로 소량 인쇄, 발행하고 있는데 그 중 한 권인 문정희 시선집을 만나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모두 스무 여권이 출간되었다 한다.
문정희 시인이 책머리에 이른 것처럼 '견고하고 우아한 한지에 청홍의 장정을 한' 시집은 그 외모로도 참 멋스럽고 우아하지만, 이 안에 실린 글자들이 한 자 한 자 활판으로 찍힌 것이라 하니 그 글자들을 보는 마음이 얼마나 신기하고 특별한지 모르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 중, 활판으로 된 책은 이 시선집이 유일하다.
거기에 책 속지에는 문정희 시인의 곱고 단아한 글씨로 내 이름 직접 넣은 서명까지 되어 있어 더더욱 특별하고 소중한 책이 되었다.
시집을 많이 읽어보지 못한지라 문정희 시인의 시집으로서도 처음 만나보는 것인데, 사랑을 노래한 시 100편과의 만남, 정말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워낙 특별 장정인지라 선뜻 밑줄을 긋거나 혹여 종이 상할세라 접착메모지도 붙이지 못하고 곱게곱게 읽기만 했는데, 마음속으로 갈무리해둔 시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사실 이 시집을 펼치던 밤은 가만히 앉아 있는데 느닷없이 눈물이 뚝뚝,이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라게 줄줄 흐르던 그런 밤이었다. 앉아도, 누워도, 그야말로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어쩌지 못하고 (그래도 밤마다 늘 읽던 습관대로) 이 시선집을 손에 잡았는데, 내 눈이야 울던 말던, 시 한 편 한 편 참으로 아름답고 환희에 가득 차더란 말이지...
이 시집을 다 읽을 때쯤에는 흐르던 눈물이 멈췄던가 어쨌던가,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게 지난 9월 끝자락의 일이었으니까...
그때는 어떤 이유로 울었건 말건, 지나고 보면 얼마나 울었는지 생각도 잘 안 날 정도로, 모든 것은 잔잔해지기 마련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_ '흙' 부분
정갈하게 새겨진 글자를 한 자 한 자, 시인이 들려주는 사랑의 언어를 한 구절 한 구절, 눈으로, 마음으로, 손끝으로, 코끝으로 읽었던 행복한 시간.
(활판이 신기해서 자꾸 손끝으로 글자를 더듬어 그 느낌을 느껴보고, 시집에 코끝 바짝 들이대 한지 냄새도 맡아보고 그랬다.)
비록 문정희 시인과의 첫만남이 많이 늦긴 했지만, 앞으로 그의 시들을 꾸준히 만나며 가슴을 촉촉하게 적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누군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는다
창에는 하늘 아래
가장 눈부신 유리가 끼워 있어
천도의 불로 꿈을 태우고
만도의 뜨거움으로 영혼을 살라 만든
유리가 끼워 있어
솔바람보다도 창창하고
종소리보다도 은은한
노래가 떠오른다
온몸으로 받아들이되
자신을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는
오래도록 못 잊을
사랑 하나 살고 있다
누군가 그리운 날은
창을 닦아서
맑고 투명한 햇살에
그리움을 말린다 _ '유리창을 닦으며' 전문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_ '겨울 사랑' 전문